6.25를 국경일로 제정하면 어떨까?
2020-06-29 (월)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예전에는 12월7일이 되면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나 ‘미드웨이’를 언제나 TV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6월6일이 되면 ‘지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이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화가 어김없이 상영되었다. 당시에는 이 영화를 애국적인 시각으로 이러한 전쟁을 잊지 말자, 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시청자가 다수이었기에 상영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지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영화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는 영화로 대체된 듯싶다. 또 도라 도라 도라 대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미국 시각의 ‘이오지마’ 그리고 일본 시각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제작 방영되었다.
이 영화들이 상영되는 당시에는 이미 많은 참전자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고령이 되어 있었고, 그리고 주류를 이루는 중장년층들은 비극적인 전쟁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비극적인 전쟁의 체험이 없는 대중들에게는 그 역사적 사실이 마음속에 각인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새삼 하는 이유는 6.25 기념일을 맞이하여 90일간 서울에서 공산치하에서 살았고 조부와 백부가 납치되고 집안이 폭삭 망한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내가 참여하는 한 포럼에서 6.25를 맞이하여 6.25 체험이라는 주제로 체험담을 녹음해 또 글로 회원들과 나누었다. 그런데 그 포럼 회원이기도 한 65세정도의 회원에게 그의 반응이 어떨까 해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래서요?’ 영어로 말하자면 ‘So what?' 이라는 반응이었다. 더 이상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반응에는 두 가지 중에 하나의 의미가 있었으리라 생각되었다. 하나는 그 체험기라는 주제 자체가 흥미가 없다거나 당신의 비극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가 아닌가했다.
그날 저녁 나는 65세인 그의 생각이 65세 세대들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현상이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 즉 비극적인 사실을 교훈으로 남기고 굳건한 반공 또는 국방의식을 한국 국민이 같기를 원하는 사람들 보다 그건 지나간 이야기 이젠 평화공존, 종전선언, 남북화해 등 보수의 눈으로 보자면 종북 좌파적인 사람들에게 이념대결에서 졌다고 보아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미 문학 특히 소설에서 반공소설에서 그래도 균형 잡혔다는 이문열의 영웅시대를 거쳐 조정래의 태백산맥으로 좌파적 시각이 압도했고, 영화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동막골 같은 영화가 출현해서 압도를 했다. 다시 말해서 문화계, 언론계, 그리고 현재의 정부 자체가 이미 좌파적인 사람들의 의해서 완전 장악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워싱턴의 6월25일 기사를 보니 평통에서 한국전참전 기념공원 앞에서 기념사를 낭독하는데 반공이 아니라 평화공존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제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나 같은 사람도 그들의 주장 즉 평화 공존이라는 것을 긍정의 눈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나의 비극적인 전쟁의 참상을 심어놓는 방법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교묘하게도 정전협정일을 전쟁승리 기념일로 정하고 6.25를 자기들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하고 있다. 한국은 6.25를 북한의 침략을 물리친 날로 국경일로 정하면 어떨까? 그저 사라져가는 우리 세대들의 메아리 없는 탄식의 체험한 이야기보다 대부분의 대중 속에서 그들과 함께 가면서 우리의 비극의 교훈을 남기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