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삐라, 전단, 플라이어

2020-06-29 (월) 12:00:00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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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연합에서 풍선에 실어 북측으로 날려 보내는 ‘삐라’를 문제 삼아 대남협박을 일삼더니 급기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시켜버렸다.

삐라는 영어 Bill(광고전단지)의 일본식 발음으로 주로 정치적인 선전선동 내용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던 1970년대 초까지 삐라는 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 당시 삐라의 내용은 미군의 잔학성과 남한정부가 미국의 괴뢰라는 내용이 많았고 평양의 지하철 등 남한보다 잘 사는 북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는 서울과 경기, 충청, 강원 등 중북부지역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으며 삐라를 주워 파출소에 갖다 주면 연필과 노트 등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바뀌고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게 되자 삐라의 방향도 남에서 북으로 바뀌었다. 남한에서 날려 보내는 삐라는 북한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민간단체, 특히 북한의 실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탈북자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삐라를 보내는 기술도 발달하여 대형풍선이나 드론을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북으로 흐르는 해류를 이용하여 페트병에 쌀과 메시지를 넣어 보내기도 한다. 삐라의 내용은 북한의 비참한 실상과 남한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모습 등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때로는 1달러짜리 지폐와 남한 드라마나 뉴스가 담겨있는 USB 카드를 함께 보내기도 한다.


21세기 인터넷 세상, 넘쳐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북한사회에서 남한에서 날아온 삐라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쪽에서 날아온 삐라를 줍거나 본 북한주민은 북한당국으로부터 가혹한 처벌을 받지만 북한주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삐라의 내용을 읽어볼뿐 아니라 장마당을 통하여 빠른 속도로 전파시키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김여정이 삐라를 문제 삼아 남한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스러운 막말비난을 퍼부어 댄 지 하루도 채 안되어 한국의 여당의원들은 삐라 북송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 하고 관련당국은 북으로 삐라를 보내는 민간인들을 현장에서 검거하겠다고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한국정부는 민간단체에서 자발적으로 보내는 삐라 살포를 물리적으로 막으려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들에게 외부세계의 실상을 바로 알릴 수 있는 정부차원의 홍보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함으로써 북한이 정상사회로 복귀하고 주민들의 인권이 향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끌어안고 챙겨야 할 대상은 북한의 김씨 정권이 아니라 독재정권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2,500만 북한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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