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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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 않는 눈

2020-06-22 (월) 이현원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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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집에서 가까운 이발소에 간 일이 있다. 이발이 시작되자 눈도 같이 내렸다. 째깍째깍 가위소리 날 때마다 눈송이가 머리에서 떨어진다. 이마 위에 똬리 틀고 앉아 있는 눈은 산전수전 겪은 노병의 흔적이다. 중년의 가파른 고개를 넘은 사람만이 받는 훈장이라 할 수 있다. 잡티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내음이 날 거라고 지레 마음먹는다.
나이 칠십이 지나면 싫든 좋든 초로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말을 듣는다. 무리에서 한 발짝 뒤로 밀려나는 대우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상의 오묘한 섭리를 인간이 헤아리기 힘들지만, 왜 검은 머리가 희게 되는지 그 이치를 떠나서, 사람에 따라서는 자연이 주는 변화를 싫어하는 이도 있다. 일부러 색칠해서라도 하얀 눈을 감추려고 한다.

나는 사계절 녹지 않고 머리에 이고 있는, 먼 산의 잔설처럼 보이는 눈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자연의 순리에 따르기 위함이요, 인생의 가시밭길을 헤쳐온 공로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울 것도, 서러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여, 맑은 날에 눈이 내린다고 이상하게 보지 말아다오. 내 머리에서 눈송이가 흩날리며 몸에 걸친 보자기에 떨어지는 모습을 그냥 낭만으로 치부하면 안 될까. 노인의 가슴에 쌓인 설움을 울컥울컥 토해내는 소리는 못 들어도 좋다.
굽이굽이 지나온 길에 깔아버린 노인의 굴곡진 삶을 그대들이 어찌 알겠는가. 고난의 흔적이 새겨진 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 가늘고 여린 눈발 덩어리지만 암벽도 뚫을 수 있는 저력을 아는 사람은 안다. 삶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데도 애석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세월이란 거친 파도에 부대낀 해안가 몽돌이 제 몸을 깎아가며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는 것처럼 본분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얼마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손발이 부르트도록 육지와 바다를 줄줄이 엮어 내 식솔들을 챙긴 보람도 있다. 자식들을 업고 키운 등허리가 거북이 등같이 굽고 갈라졌지만, 눈송이가 낙엽처럼 날아와 패인 골을 메워주고 있다. 꽃이 지면서 서럽지 않음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부딪치는 세상살이는 동전의 양면 같다. 밝고 아름다운 앞면은 당연한 일인 양 무심히 지나치게 마련이다. 한편, 뒷면은 거짓이 판치고 불의가 날뛴다. 악화가 양화를 쫓아버리고 어둠의 세력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다. 이럴 땐 밝은 사회는 캄캄한 세계에 흡수되어 빛을 잃고 만다.
한편으로,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려도 하늘은 침묵만 하고 인간은 갈 길을 잃고 벼랑 끝에서 헤매고 있다.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다는,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는 기회로 삼자. 소소한 일상생활이 행복이라는 삶의 깊이를 터득했다. 산과 들로 나가 대자연에 몸을 비추어 보면 모두가 티끌 같은 몸짓이고 물거품 같다. 우리가 체험이나 책에서 얻지 못하는 진리를 자연에서 배울 수도 있다.
인간의 능력과 한계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박제되는 듯하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점도 있다. 저녁노을 바라보며 가슴 쓸어내리는 회한을 구름과 같이 떠나보내고 싶다.

아침 이슬과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며 초로인생의 안타까움에 젖어보는 순간이 있다. 세월이란 밧줄에 묶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만 바라볼 때도 있다.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며 오고 간다.
봄이 돌아와도 녹지 않는 눈, 보배라 할 수는 없지만 매사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벌써 이, 삼 개월 이발소에 가지 못하니 머리가 텁수룩하다. 속세 떠나 암자에서 수행하는 수도승 부럽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해탈을 기대해 본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이현원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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