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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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불편으로의 초대

2020-06-18 (목) 이현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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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서 백인 할아버지의 쇼핑 카트에 세게 친 적이 있다. 고령자의 기준으로 전속력 질주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속도와 강도로 골반을 세게 치고 지나갔지만, 사과는 없었다. 나는 그를 따라가 사과를 받아내려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가는 길에 또 다른 고령의 백인 남성이 동양인 학생에게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목격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미국인들의 직업을 빼앗지 말란 말이야! 벌써 십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나이가 많은 백인 남성을 보면 몹시 경계한다.

내가 사막에서 사륜구동차로 바위를 기어오르는 동영상을 보기 전까지 나의 운전 실력을 믿어주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동양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라틴어를 잘 한다는 말을 내심 믿지 않았다. 가난한 지역에서 자란 흑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가 교황님의 라틴어 기도문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보고서야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피부 색깔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가끔, 정말 그러지 않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편견의 속삭임에 굴복할 때가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딘가 심술 맞은 표정의 백인 남성을 보면, 다시 울컥 치밀어 오른다. 심지어 그가 나의 예상대로 고약한 인간이라면, ‘그럼 그렇지’ 하고 만다. 이런 식의 타협은 정말 쉽다. 스테레오타입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성실하게 검열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지난 화요일, 남편의 페이팔 계정이 해킹을 당했다. 범인은 우리 돈으로 니먼 마커스에서 엑스라지 사이즈의 화려한 구찌 자켓과 거대한 금장 버클이 달린 베르사체 벨트를 샀다. 둘 다 남성용이었다. 우리 부부는 범인이 분명 커다란 흑인 남성일 거라며 웃었다. 과시적인 명품으로 치장한 덩치 큰 흑인 래퍼를 상상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웃음이 부끄러운 일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불과 몇 주 전, 편견이 살인의 도구가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엄격하고 피곤해지고 말았다. 타협 하는 순간, 공범이 되어버린다. 당신도 보았는가? 그의 죽음을. 당신의 삶도 조금 불편해졌기를 바란다.

<이현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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