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무릎 꿇은 경찰관의 앞과 뒤

2020-06-11 (목) 김지나 / 엘리컷시티, MD
크게 작게
미국의 백인 경찰관이 흑인의 목덜미를 무릎으로 제압하고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지금 미국은 불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그에 반해 그 죽음을 같이 애도하는 뜻으로 같은 경찰관들이 한쪽 무릎을 꿇어 그 슬픔을 애도하고 있다. 무릎으로 시작된 사건이 무릎으로 승화되었다.
‘무릎 꿇기’가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은 2016년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 쿼터백 콜린이다. 그가 캐롤라이나의 팬서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비무장한 흑인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에 따른 인종차별 항의 표시로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국민의례를 거부한 것에서 유래 되었다. 무릎을 꿇고 말없이 시위한 멋진 사나이다.

처음의 시위는 비교적 평화롭게 이어졌다. 적어도 트럼프가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 된다”라는 트윗이 있기 전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분노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를 ‘폭력배’(Thugs)로 규정한 뒤 군 투입에 총격까지 운운했고, 과거 흑인 시위 때 보복을 다짐한 한 경찰의 문구까지 인용했다.
실제로 폭동이 일어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일대에는 500명의 주 방위군이 배치됐다.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기어이 거센 후폭풍을 불러왔다.
남자가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지금의 한쪽 무릎 꿇기는 절대 굴복할 수 없는 상대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되 나의 자존심도 지키며 나의 뜻을 말없이 관철시키고자 할 때 행하는 행동이다.
반면에 양쪽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의미로 꿇림을 받는 입장에서는 민망하기도 하고 나름 승리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충성과 비굴 사이에서의 무릎이라고나 할까? 양쪽 무릎을 꿇는 행동은 그리 유쾌한 모습은 아니다.

멀리서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을 줄 알았던 아이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검은 옷을 입고 한 손에는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 흑인 친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흑인은 자기의 아이들에게 경찰 앞에서 절대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는 당부를 꼭 한다고 한다. 뛰면 바로 총으로 죽을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아빠가 자기의 자식에게 자기의 나라에서 자기를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경찰에게 왜 위협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느냐며 그게 가장 가슴 아프다며 흐느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폭동이 일어나고 한인 마켓이 털리고 사상 초유의 대혼란을 겪고 있는 위험속에서 나와 내 가족만을 염려하고 내 가족과 내 민족의 사고가 없기만을 바라고 있는 내 개인주의가 부끄러웠다. 우리 아이들은 직접 발로 뛰며 소셜미디어에 동참하며 앞장서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폭력시위에는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견해와 뚜렷한 자기 생각을 표출한다 해도 그 방법이 폭력과 방화 그리고 약탈이 동반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우리 가족은 적극적인 대처안을 내놓았다. 일단 흑인 커뮤니티에 기부금을 내놓기로 했다. 큰 돈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가까이 도울 수 있는 곳을 찾아 후원하는 걸로 시작을 하려고 한다. 시간이 나는 대로 친구들과 연대해 피켓시위에 참석하기로 하고 공부하는 학생이라 소셜미디어에 남을 만한 정치색은 안내는 게 우리 어른들의 걱정이지만 젊은 혈기를 막을 수는 없다. 적극적인 소셜미디어에 흑인 옹호 글을 기재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기로 했다.

참으로 다행인 건 경찰 전체가 무릎을 목덜미를 누르는 데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의 극한 대치 상황 속에서 일부 지역 경찰관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인 한쪽 무릎 꿇기를 하거나 시위자와 포옹, 악수를 하면서 시민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시위대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무릎으로 시작된 일이 무릎으로 끝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든 일시에 한 번에 동시다발로 해버리면 한방에 끝이 나는데 지저분하게 끌면 끝이 나지 않는다. 한두 명의 경찰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 경찰관이 애도의 뜻으로 모두가 한날한시에 한쪽 무릎 꿇기를 단행한다면 이 사태는 끝나지 않을까?

<김지나 / 엘리컷시티,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