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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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정복자들 (Conquistadors)

2020-06-10 (수) 엘렌 홍 (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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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외교관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역사책이 있다. 바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이다. 제목 그대로 왜 나라가 망하는지 경제적 측면에서 흥미있게 풀어놓은 책이고, 특히 한국을 긍정적으로 많이 언급한다. 그런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페인에서 중남미로 온 정복자들, 콩키스타도르(스페인어 conquistador, 15-17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인들)이다.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같은 날씨 좋고 아름다운 미국 남쪽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다. 왜 그들이 목숨 걸고 자신의 터전을 탈출해서 미국으로 달려오고 있는지 이 책은 꼼꼼히 알려준다.

뒤늦게 식민지 사냥에 나선 스페인은 다른 북유럽 나라들과 달리 꼭 원주민의 우두머리를 제일 먼저 찾아서 그를 숭배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아주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임으로 모두를 빨리 항복시켰다. 먹을 것과 보석을 가져다 바치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원주민들을 숨막히는 공포에 떨게 하고, 죽도록 일을 시키며 세금을 걷었다. 몇백 년 후인 지금까지도 원주민들을 힘든 노동으로만 생계와 대를 이을 수 있게 체계적으로 밟고 또 밟는다. 참다 못한 원주민들은 서로를 강탈하고 빼앗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들로 변해가고 있다. 과테말라는 1531년 쳐들어와서 장악한 정복자들의 후손들이 아직까지 정권을 잡고 있다. 전 인구의 1%도 안되는 그들은 철저히 기득권을 보장하고 경제권을 절대 뺏기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중남미가 유럽인들에게 발견되기 전엔 어땠을까? 멕시코 켄쿤에 있는 마야 유적에 가면 가뭄 때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노예들을 잡아들여 모든 주민들 앞에서 처참하게 목을 잘랐던 잔인함이 그대로 벽화에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피라미드 앞에서 말을 하면 목소리가 이상한 메아리로 다시 돌아온다. ‘내 머리 돌리도’ 하는 것처럼 수많은 영혼들이 웅성웅성 하는 것 같은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다. 그 끔찍한 마야 문명은 결국 망했다. 그런데 몇 백년 후에 더 잔인하고 야비한 콩키스타도르가 나타나서 또 몇 백년이나 더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 사람들에게 남다른 연민을 느낀다. 우리가 일본에게서 해방되지 못했다면 우리도 아직 그 원주민들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엘렌 홍 (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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