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일상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밖에서 안으로, 타인과의 활동에서 같이 사는 가족에게로 범위가 축소되고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어간다. 외출을 마음대로 못 하니 답답한 점도 있지만, 그동안의 외출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삶의 굴곡진 곳을 지날 때는 긍정적 마음가짐이 필수라는 생각으로, 좋은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것들을 찾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흔하게 듣는 요즈음이다. 그 어떤 것도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도 그것은 사라지고 그에 관한 기억과 추억만 남는다. 우리에게 이번 사태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고통을 극복한 후에 삶이 어떻게 변화했느냐로 그 고통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평가하듯이, 이번 사태가 종식된 후에 우리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달라질지에 벌써 관심이 쏠린다.
좋은 일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쁜 일이라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옛말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사태 또한 지나고 나면 긍정적인 기억도 적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얼굴을 마주한 만남과 문자를 주고받는 게 다르듯이, 연극과 영화가 다르듯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 일상의 삶이 변화하리라는 말이다.
1918년에 시작된 스페인 독감은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계적으로 몇천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서야 종식되었는데, 그것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감염이 확산하는 중에 자연스레 이루어진 집단면역의 힘이었다고 한다. 최첨단 의학으로도 아직 이렇다 할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감염자 수가 줄지 않는 걸 보면 코로나바이러스도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나 자신이 내 한 몸이 아니고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온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요즘같이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다. 가족에서 이웃으로 사회로 전체 국가로, 멀리 보면 지구촌이 건강해야 나 자신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를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절감한다.
식품점 앞이다. 아직 10분 정도 더 있어야 안에 들어가 장을 볼 수 있다.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비닐장갑으로 무장한 노인들이 개점을 기다리며 줄을 서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미터 간격으로 줄을 서다보니 사람이 많지 않아도 줄이 길어 보인다. 원래 문을 열던 시각에서 한 시간 전부터 일반인에게 개점할 때까지가 노인을 위한 시간이다. 드디어 문이 열린다.
밤새 걸려있던 마법이 풀리는 순간 같다. 차에서 기다리던 노인들도 일제히 문을 열고 나와 더딘 걸음으로 카트를 향한다. 1불짜리 동전을 넣어야 열리는 카트의 잠금장치 앞에서 지갑을 열고 동전을 찾느라 허술하게 낀 비닐장갑이 벗겨질 듯 위태롭다. 비상사태에도 동전을 넣어야 움직이는 카트가 야속하다. 대부분의 노인은 눈만 겨우 보일 뿐 표정은 읽을 수가 없다. 전쟁 아닌 전쟁을 방불케 하는 차림새들이다. 저 힘없는 구부정한 노인들에게 희고 검은 마스크를 씌우고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쇼핑 가방을 들게 만든 건 무엇일까.
문을 연 지 몇 분 안 된 것 같은데 늙수그레한 할아버지 한 분이 출구에 모습을 드러낸다. 손에는 달랑 꽃다발 하나뿐이다. 저걸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렸구나. 알록달록한 꽃의 조합을 보니 축하용 꽃다발 같다. 누구를 위한 꽃일까 궁금했는데 내 차 바로 옆에서 내린 아주머니와 아는 사이인가 보다. 간단한 인사 끝에 아주머니의 시선이 꽃에 와 닿는 걸 본 노인이 쑥스러운 듯 웃는다. 오늘이 아내 팔순인데 자식들도 못 오고 전화만 받으니 서운해서 꽃이라도..., 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랬구나.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하던 그 소박하고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그리울까.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노인의 시간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흩어진다.
이번 사태가 지난다 해도 풀기 어려운 문제가 산재해 있으리라. 사회는 물론 개인의 생활양상 또한 바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면 활동이 크게 줄어들고, 인간이 서야할 자리에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큰 비중으로 들어설 것이며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터.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세상을 휘두른 지 여러 달 되었어도, 무서울 게 없는 요술방망이 같던 과학이 밀리고 있다. 더구나 믿고 기대했던 과학은 이 수상한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도 전인데 희생자는 계속 늘어만 간다.
이 모든 일이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불안감을 더한다. 거리두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체적 거리두기뿐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것들 중에서 무엇과 얼마만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도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집안에서 쳇바퀴 돌 듯 하는 시간이 일상이 되어버린 생활에 따스한 긍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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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