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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기의 뒤끝

2020-06-05 (금)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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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가격이 많이 올랐다. 지역에 따라서는 신선한 통마늘 사기가 힘든 곳도 있다. 마늘 품귀 현상 때문이다.

‘세계의 마늘 수도’로 불리는 북가주 길로이의 마늘 업계에 따르면 마늘 품귀는 코비드-19가 불러온 또 다른 현상이다. 업계에서 분석하는 이유는 대략 3가지. 자가 대피령과 함께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면서 가정의 마늘 소비가 크게 는 것이 주 원인이다.

길로이의 3대 대형 마늘 농장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랜치에 따르면 보통 한 주에 50만 파운드를 출하하던 것이 갑자기 80만 파운드로 늘었다. 수요가 늘기 시작한 것은 자가 대피령이 내려진 지난 3월부터. 마늘 수요처는 크게 마켓, 식당, 가공업체 셋으로 나눠지는데 식당이 대폭 준 반면, 마켓 수요가 엄청 늘었다.


마늘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좋다는 인식도 수요 급증에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UC 버클리의 한 전염병 전문가는 이런 추측에 찬물을 끼얹는다. “나도 마늘을 많이 먹지만 마늘이 감염병으로부터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마늘 수확을 앞둔 5월에 늦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길로이의 마늘 작황이 좋지 않았던 것도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크리스토퍼 랜치만 해도 비 때문에 1,000만 파운드 이상의 마늘을 폐기처분했다고 한다. 모자라는 물량을 채우기 위해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에서 일부를 수입했으나 마늘 공급이 달리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라는 전언이다.

마늘 산지 길로이가 지척인 샌호세의 마켓만 해도 요즘 통마늘 5개 한 묶음이 3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남가주 한인마켓에서는 한때 99센트 하던 것이다.

하지만 마늘 품귀 현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늘은 가을에 심어 다음해 늦은 봄이나 여름에 거두는 작물. 길로이의 경우 조금 있으면 올해 마늘 수확이 시작된다. 유통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캘리포니아의 소비자들은 다음 달이면 올해 햇마늘을 살 수 있을 것으로 길로이가 로컬 취재처인 샌호세 머큐리 지는 전망한다. 마늘이 다량 필요한 분들은 한 달 여만 기다리시면 되겠다.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화장지, 냅킨, 키친타월, 클리넥스 등은 한동안 선반에서 찾을 수 없었다. 세정제, 타이레놀, 체온계, 과산화수소, 증류수 등도 품귀 목록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밀가루와 이스트가 떨어진 마켓도 있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마켓 선반 위로 돌아왔다.

사재기 열풍이 불 때 사놓았던 식수들. 집 한 구석에 쌓여있는 병물 박스를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 것이다. 쌀과 라면 등도 그렇게 사들여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살 수 없어 애태우게 할 이유가 없었다.

불안한 상황이 내부적으로는 불안증, 밖으로는 사재기를 불러온다. 요즘 육류 부족과 가격 상승은 현실이다. 가공업체 종업원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돼 정상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가 모자라면 당분간 단백질 원을 생선 등으로 돌리면 되지 않을까. 사재기가 대부분 근거없는 공포의 소산이었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보여준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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