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꽃들은 화려하게 치장하고 우리를 유혹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황금 같은 봄날의 시간은 갇힌 새가 되어 주름과 흰 머리만 키워가고 있다. 세 달이 넘도록 푸른 숲, 넓은 들판을 꿈꾸던 연로하신 문학회 회원의 전화가 왔다.
“언제나 모일 수 있나?” 이야기를 좋아하고 학구열이 있고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거르는 일없이 매달 글을 써서 발표하는 분이라 미안할 정도인데 드디어 경상도 특유의 억양으로 한 말씀 보태신다. “내가 요즈음 느낀 걸 써봤는데 들어 보겠나”라고 하면서 숨도 안 쉬고 줄줄 읽어 내리신다. ‘외로움’을 주제로 쓰신 시이다.
인생을 즐긴다는 건 마음을 활짝 열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감동하며 삶의 기쁨을 매일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만져보고 시리도록 파란하늘에 한 점씩 떠도는 하얀 구름을 눈에 담고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을 세어보면서 영원한 고향을 꿈꾸어보는 삶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해서 시간만 나면 누군가와 어울리려 하고 모임을 만들어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움 자체에 괴로워하기보다 외로움을 느낄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다.
해가 갈수록 나만의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혼자 책보고 혼자 식사하고 혼자 TV로 세계여행을 하고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에 눈길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히려 가장 여유롭고 평안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잃어버린 젊음을 잠깐 빌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내면에 집중하며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우주의 거대한 질서와 신비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인간은 가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이러스로 인한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는 고독에 귀 기울일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두렵고 불안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의 격리생활에서 거리두기를 하는 외롭고 슬픈 감정이 우울증을 만든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이다. 눈을 서로 마주보며 한참 이야기하다보면 서로의 세계에 공감하게 되고 웃음꽃이 피고 행복의 엔돌핀이 솟아 오른다.
목이 쉬도록 응원하며 즐기던 운동경기, 짜릿하고 감동적인 영화, 밤새며 읽었던 연애, 탐정소설, 눈이 촉촉이 젖어오는 감미로운 음악처럼 생명이 진동한다.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들고 청중이 거리를 메우며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하는 플레시 몹을 비디오로 보았다. 요즈음 상황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젠 답답하고 외로운 감정을 달래느라 세계가 하나가 되었다. 버추얼 연주가 유행이다. 세계 곳곳 각자의 처소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각양각색의 악기를 연주하며 각자의 색깔로 서로의 마음을 유튜브에서 어루만지고 있다. 새 가정을 시작하는 결혼예식, 지구라는 별에서 영원한 별을 향해 마침을 갖게 되는 장례예식도 몇 명의 가족끼리만 모이고 친지들은 온라인으로 축하하고 위로하고 축복해 준다.
우리집 다섯 살짜리 손녀는 매일 줌(zoom )으로 선생님을 보며 공부하고 일요일이 되면 두 살짜리 손녀까지 예쁜 드레스로 갈아입고 합세해서 모니터 앞에 앉아 기도하며 교회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슬픔의 음표로 그려지는 일이 완전히 없어지길 바란다. 연약한 인간이지만 함께하면 외롭지 않다. 불확실하고 비관적인 이 현실을 인정하지만 잘 될 것이라는 굳건한 신념을 갖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슬기로운 지혜가 생긴다.
공공규칙을 잘 지키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고 서로 나누며 협력할 때 우리는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진정한 행복은 불편을 감수하고 서로 노력하면서 조금씩 이루어가는 삶의 기쁨 속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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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