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요리와 음식에서 꺼내보는 추억

2020-05-26 (화) 12:00:00 허경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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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음식 만드는 과정을 담은 스토리를 읽거나 보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뚜렷하게 기억나는 책 중 하나는 거인에게 잡혀 얼음동굴 안에 갇힌 소년이 셔벗을 직접 만들어주어 탈출한다는 내용의 동화책이다. 소년이 고드름을 돌에 열심히 갈아 으깬 과일들과 함께 큰 볼에 담아 섞는 그림이 있는데, 초등학생 때 하루에도 몇번씩 책을 넘겨가며 직접 손을 책에 대고 고드름을 모으고 딸기를 따는 시늉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는 피아노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토스트와 샌드위치 요리책을 식빵 굽는 다양한 방법 하나하나까지 열심히 정독했고, 고등학생 때는 한창 유행하는 1인칭 시점으로 찍은 요리 영상들을 ‘테이스티(Tasty)’에서 매일 찾아보고, 고든 램지가 나오는 모든 요리쇼, 그중 ‘매스터 쉐프(Master Chef)’ US 시즌 4는 매회 대사를 외울 정도로 많이 봤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음식이 나오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줄리 & 줄리아(Julie & Julia)’에서 메릴 스트립이 버터에 구워진 생선을 먹는 장면이나, ‘더 헬프(The Help)’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이 옥타비아 스펜서와 함께 밀가루와 치킨이 들어있는 봉지를 흔드는 장면, 그리고 ‘벼랑 위의 포뇨’에서 소스케의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우유에 꿀을 타주는 장면들을 모두 사랑한다. 하지만 이 모든 영화 중 가장 애정하는 영화는 디즈니의 ‘라따뚜이’이다. 차가운 음식 평론가 이고가 레미의 음식을 먹고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라따뚜이의 맛을 회상하는 장면은 언제나 봐도 행복해진다.

누구나 음식과 관련된 기억이 있다. 몇 년만에 요리와 관련된 컨텐츠가 급증한 것은 하루하루 더 개인주의로 변해가는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과거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더욱 찾는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음식은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시 버클리에 가게 된다면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을 것은 ‘라따뚜이’를 보며 먹는 김치찌개가 아닐까?

<허경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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