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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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활동을 되돌아보며

2020-05-25 (월) 서옥자 제2대 워싱턴 정신대 문제대책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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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에서는 정의기억연대(구 정대협)의 사건으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분위기이다. 이 곳 워싱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했던 나로서도 착잡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서울에서는 기부금의 통들이 커서 소위 정신대 일을 하는 단체에 유명 연예인, 기업가들이 보통 수천만원, 때로는 수억을 기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수 년 간 미국에서 정신대 활동을 하면서 늘 기금이 충분하지 못해서 많은 활동을 몸으로 때우며 뛰어야 했던 나로서는 부럽기만한 세계였다.

회장(2001-08년)으로 일하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워싱턴 정대위에 200달러를 후원비로 내주신 분을 찾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그 분의 일터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월남전 참전 아저씨는 무더운 날, 비좁은 세탁소 안에서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일하시고 계셨다. 앞의 치아도 몇 개만 덩그렇게 남은 그 분의 웃는 주름진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이 숙연해졌다. 좋은 일로 애쓴다고 교통비에 보태라며 지인을 통해 기부해 주신 분. 나는 그 이후로는 그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을 기리며 단 몇 달러 쓰는 것도 아끼며 감사한 마음을 품고 일을 했다.
서울에서 수천만원, 수억원의 기부금을 받는 단체가 부럽지 않았다. 워싱턴 정대위 재정을 절약하고자 서울에서 할머님들이 오시면 호텔은 아예 상상도 못하고 늘 우리 집에 모셨다. 2001년, 고 황금주 할머님께서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이 곳 워싱턴에 오셨을 때도 그 당시 살아 계시던 레인 에번스 의원이 미 의회 옆에 있던 당신 집에 할머님을 모시도록 해주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많을 것을 걱정한 에번스 의원이 도우미 아줌마를 제발 일 주일이라도 고용하자고 간곡히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모든 행사를 치렀다. 2006년 2월, 워싱턴에서 미국 여성 인권단체 주최로 ‘V-Day 2006 Spotlight’를 갖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인권 단체가 한국의 정대협과 사전에 준비를 해왔는데 그 단체에서 에번스 의원 사무실로 연락이 오는 바람에 내가 행사에 끼어들게 되었다. 이 일로 방문하신 이용수 할머님, 김옥선 할머님은 이코노미 석을 타고 오셨는데 한국 정대협의 모 관계자는 비즈니스 석을 타고 왔다고 이용수 할머님이 얘기를 해주셔서 알았다.

2007년 2월, 미 의회에서 역사적인 청문회를 갖게 되었을 때에도 이용수 할머님은 우리 집에 묵으셨다. 내가 청문회 준비하느라 바빠서 식사도 챙겨 드리지 못했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응원해 주셨다. 떠나는 날이면 언제나 따뜻한 편지를 놓고 가시곤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 의회에 역사상 처음으로 소개하고, 매 회기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발의한 레인 에번스 의원의 숨은 공로가 있었기에 2007년 7월에 ‘HR. 121’ 정신대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될 수 있었던 역사의 페이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는 파킨슨 지병으로 2014년 11월 5일, 63세의 나이에 쓸쓸하게 홀로 일리노이 주에 있는 그의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신대 문제의 횃불을 밝혀준 선구자요, 나의 든든한 동반자였던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몇 년 전부터 에번스 추모 기념회를 발족해 서울에 그 분의 동상을 세우려고 추진을 했었다.
하지만 소위 일본군 위안부 인권 문제를 위해 함께 일한다는 단체들에게 에번스 의원 동상을 세울 수 있도록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냉대를 받았다. 정신대 문제의 진정한 공로자를 기리기 위해서는 한 푼도 후원해 주지를 않았다.

오랜 세월, 뜻을 함께 했던 주위의 따뜻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2019년 7월, 에번스 동상을 서초동의 국립외교원에 세울 수 있었다. 역사를 왜곡해 거짓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리를 추구하며 그 의미를 위하여 헌신하는 분들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감사하며 살 수 있다. 작년 여름, 서울에 묵는 동안 한국 정대협에서 발행한 할머님들의 증언집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증언이라기보다 대필로 쓴 글 중에는 정신대 문제의 정점인 미국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HR 121의 통과, 그리고 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위해 수많은 세월 땀 흘리며 혼신을 바쳐 일한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언급이 없었다. 이용수 할머님이 내 이름을 잠깐 언급한 것 외에는.
우리처럼 작은 재정 규모의 단체도 해마다 연례 정기총회에서 회계 감사 보고와 인준의 절차를 밟는다. 어느 NGO 단체나, 특별히 거액의 기부금과 정부의 후원을 받는 단체는 반드시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 정대협은 피해자 할머님들을 위한 단체이지 단체를 위한 할머님들이 아니다. 올바른 역사와 정의가 세워지기를 기도해본다.

<서옥자 제2대 워싱턴 정신대 문제대책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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