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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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20-05-24 (일) 최연홍 / 시인,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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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잎 사이로 새어나오는 저녁 놀이 고울 때
나무는 하루를 접는 감사기도에 들어간다
새벽별들이 지고
동녘이 밝아오면
잠든 새들을 깨워
아침찬송을 드리게 하고
하루 해가 질 때까지 산소를 내뿜어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공급하고
저녁이 오면
나무도 잠들어 숲의 평화를 이끈다
나무는 숲의 주인
폭풍우가 와도 거기 생명들은 살아있다
뿌리 깊은 나무의 힘
빈 겨울을 지키는 숲의 나무들은
봄이 되면 신록을 선사하고
여름되면 청춘을 구가하고
가을 되면 단풍 들게 하여
겨울이면 나무잎들을 떨어뜨려
뿌리를 보호한다
시인이 숲을 방문할 때
나무는 문을 열어
그를 환영한다
그 둘 사이에 끝없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시인을 시인에게 만든다.
이제 시인의 방문이 줄어들고 있다
노 시인은 겨울을 지나기 어려운 나이,
나무는 그를 위로한다
숲은 시인 명상의 집,
시인의 방문이 더 이상 없으면
숲은 시인의 묘지를 거기 조용한 터에
잡을 것이다.
나무는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슬픔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 시가 언제나
조용히 그를 따뜻하게 감싸게 할 것이다.

<최연홍 / 시인,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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