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플레이션 공포

2020-05-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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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미국의 물가가 두 달 연속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반대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경제활동이 침체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의 부문에서 가격이 떨어져 물가 상승률이 0% 이하가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 물가가 지난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난주 연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3월보다 0.8%가 떨어졌다. 3월에는 전달보다 0.4%가 하락했었다. 예상했던 대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과 호텔, 소매업종의 물가가 크게 내렸다. 다만 재택생활로 식료품 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인지 식품가격은 2.6%나 뛰었다.

변동성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가격은 빼고 취합하는 ‘핵심(core) 소비자물가지수’만 보면 0.4%가 떨어졌는데 이는 이 지수를 산정하기 시작한 1957년 이후 월 하락폭으로는 가장 큰 수치다. 경제전문가들과 정부관계자들로서는 걱정할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디플레이션 단계에 접어들지는 않았다. 지난 12개월을 취합해보면 그래도 물가가 0.3%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경제 충격이 계속된다면 디플레이션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얼핏 생각하면 물가가 떨어지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물가가 뛰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본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기업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소비를 미룬다. 그러면서 기업 수익은 감소하게 되고 결국 투자와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다시 소비부진으로 이어지게 됨은 물론이다. 경제 전체가 심각한 침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늪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여간해선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떠올리면 된다. 일본이 여기서 벗어나는데 거의 20년이 걸렸다. 그래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같은 경제학자는 디플레이션을 “단호히 맞서 싸워야할 괴물과 같은 존재”라고 아주 강력한 표현으로 경계한다.

경제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코로나19 위기가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데 견해를 같이한다. 경제가 재개된다 해도 저물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란 얘기다. 긴급 재난지원금을 풀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위협이 상존하고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이것이 얼마나 소비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소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놓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최근 연방정부가 취한 재정정책 정도면 통상적으로는 인플레를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천문학적 돈을 풀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꽁꽁 얼어붙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녹여 경제를 정상적인 사이클에 다시 올려놓을 수 있을지가 경제 관료들과 정치인들에게 지워진 책무이다.

연준은 2% 내외의 인플레이션을 미국 경제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이 수준으로 물가상승률을 끌어 올리느냐가 경제회생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그리워지는 정말 수상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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