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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더: 새를 보는 사람들

2020-05-19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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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지지배배 찌륵찌륵~

산책길에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면, 뒷마당에 날아드는 새가 더 많이 눈에 띈다면, 이는 무슨 특별한 일도 우연도 아니다. 지금은 새들이 연중 가장 활발한 시기이고, 사람들이 산책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는 일이 늘어났으며, 교통량과 소음이 줄어들어 자연의 소리가 더 잘 들리기 때문이다. 요사이 다시 트래픽이 많아졌지만 셧다운 첫 한달여 동안은 LA 도심에서도 사방이 조용해서 산책길에 갖가지 새들의 노랫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봄은 수많은 철새들이 이동하고, 텃새들은 둥지를 짓고 알을 부화하는 계절. 지난 5월9일은 ‘세계 철새의 날’(World Migratory Bird Day 2020)이었다. 새들이 가장 시끄럽고 부산하고 활발한 시기가 코로나 쿼런틴과 맞물리면서 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모양이다. 얼마전 AP 통신은 3월과 4월에 새를 키우거나 조류관찰 하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새집과 모이, 모이통, 망원경 등의 판매가 크게 늘었고, 새 이름을 알려주는 버드-아이덴티피케이션 앱을 다운받는 숫자가 갑자기 치솟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조류보호단체로 가장 권위있는 오듀본 소사이어티(Audubon Society)와 코넬 조류연구소(Cornell Lab of Ornithology)의 새 가이드 앱은 지난 두달 동안 다운로드 건수가 두배나 늘었고, 웹사이트 방문도 50만건이나 증가했다. 부활절 주말에만 조류 앱(Merlin ID)의 다운이 무려 8,500건이나 있었다고 코넬연구소는 밝혔다.

집안에서 몸을 틀던 사람들이 창문 밖의 매혹적인 세계를 찾아낸 것은 코로나 팬데믹의 뜻하지 않은 수확이다. 이처럼 암울한 시기엔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그 대상이 귀엽고 사랑스런 새라면 더 이상 좋은 선물이 없을 듯하다.

미국에는 새를 좋아하고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인구통계국 2009년 자료에 의하면 자신의 취미를 조류관찰(birdwatching)이라고 기록한 사람이 무려 6,000만명이나 된다. 미국인 5명중 한명 꼴이다. 이런 사람들을 버더(birder)라 하고, 새를 보러다니는 행위를 버딩(birding)이라고 한다. 미 어류야생동식물보호국(U.S.FWS) 2011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버더들이 버딩 장비와 여행에 쓰이는 비용이 연간 410억달러에 달한다.

프로 버더와 버딩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를 일별하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2011년 코미디 ‘빅 이어’(Big Year)는 새 마니아들의 광적인 집착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다. 새 때문에 이혼하고도 새만 쫓아다니는 프로그래머(잭 블랙), 새가 좋아 대기업 회장자리도 싫다는 은퇴사업가(스티브 마틴), 최고 버더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파렴치도 마다않는 탐조의 달인(오웬 윌슨), 세 사람의 사생결단 경쟁분투가 스피디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빅 이어’는 실제로 북미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버더들의 가장 큰 비공식 경기다.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365일 동안 개인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새를 관찰하느냐를 겨루는 게임으로, 1934년 시작된 이래 해마다 기록이 경신돼왔다. 현재 북미 최고기록은 2019년 839종을 찾아낸 호주의 존 위겔이고, 세계 최고기록은 2016년 네덜란드의 아르잔 드와르쉬스가 세운 6,833종이다. 이 정도 기록을 내려면 일년 내내 전세계 오지를 샅샅이 훑고 다녀야할 것이다.

아마추어 버더들을 위한 행사도 있다. 매년 2월 오듀본과 코넬연구소가 공동주최하는 ‘새 숫자세기’(Great Backyard Bird Count) 대회는 전 세계 누구나 짧게는 15분, 길게는 나흘동안 새를 찾고 세고 실시간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것이다. 이 데이터는 조류학자들이 지구상 새 개체군의 건강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2019년에는 16만명이 참가했고, 올해 행사에는 25만여명이 7,014종의 새를 4,223만5,616마리나 관찰했으니 내년 24회 GBBC는 훨씬 더 많아질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새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으면 다큐멘터리 ‘버더’(Birder)와 ‘댄싱 위드 더 버즈’(Dancing with the Birds)를 추천한다. ‘버더’는 봄가을에 170여종의 철새이동을 보러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지대로 모여드는 버더들에 관한 37분짜리 기록영화, ‘새들의 춤’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재미있는 51분짜리 자연다큐다. 모두 2019년작으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새는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마음 속 근심 불안 스트레스가 어느덧 사라져버린다.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자연이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 새소리를 들으면 몸이 긴장을 풀고 마음은 청명해진다. 게다가 새를 따라 자꾸 밖으로 나가고 자연을 찾다보면 몸이 더 건강해지고 호기심이 더 많아지고 일상이 활기차진다. 버더가 많아지면 세상도 더 밝아질 것이다. 한인 버더도 많아지면 좋겠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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