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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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건강해야 인간도 산다

2020-05-18 (월)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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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파란 하늘엔 뭉게구름이 일고 햇볕은 제법 따갑다. 나무들은 아직도 봄이 수줍은 듯 연두빛 어린잎으로 엷은 옷을 지어입고 훈풍에 몸을 맡기고 있다. 터질 듯 소담스럽게 핀 겹벗꽃 송이들이 호수에 핑크 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위를 오리 한 쌍이 나란히 떠가는 모습이 평화롭다.

무심한 대자연은 지금 인간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고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예나 이제나 다름없이 계절의 순환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인적이 드물어진 세상, 기계의 소음과 매연이 잦아든 세상… 하늘은 한층 파랗고 공기는 훨씬 맑아졌으며 숲은 더욱 푸르러졌다. 잠시나마 인간으로부터 자연을 되찾은 야생동물들은 모처럼 찾아온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념일들이 며칠 사이로 몰려 있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하는 가족을 COVID19 팬데믹에 잃고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안타까운 것은 가족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면서도 감염 위험 때문에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먼 발치에서 무전기나 전화기로 서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매주 돌아가신 교우들의 명단을 전해 받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평안히 가시기만을 기도 드릴 뿐 장례식도, 연도(煉禱-위령기도)도 참석할 수가 없다.


이 비극의 끝은 언제인가. 정다운 사람들이 다시 만나 부둥켜안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환하게 웃을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 전역에 창궐하고 있는데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폐쇄령(Lockdown)과 재택명령에 싫증과 피로감을 느낀 주민들이 여기저기서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시건주에서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시민들이 주정부청사에 몰려가 자유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니 그 사람들은 도대체 총기를 가지고 이 와중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연방정부와 여러 주정부들이 락다운(Lockdown)규제를 완화하고 서둘러 비즈니스를 오픈하려 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때 이른 규제완화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관련부처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을 소홀히 할 경우 6월초에 미국의 신규감염자수가 매일 20만명에 달하고 사망자 수도 하루 3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5월 초순 현재 미국의 사망자 수는 이미 7만명을 넘어 전 세계 사망자수의 30퍼센트를 점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COVID-19 팬데믹은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를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았다. 지구는 단순히 기체에 둘러 쌓인 암석덩어리가 아니라 생물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아우르는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변화하고 진화해 나가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이 그가 주창한 가이아(Gaia-그리스 대지의 여신) 이론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과 산림훼손, 야생동물의 남획이 계속될 경우 머지않아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으로 70억 인구의 대부분이 멸망하고 10억 정도만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최근의 기상이변과 지진, 해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훼손되고 있는 생명체 지구가 아픔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마침내 인간을 징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듯 인간은 더 늦기 전에 자연을 경외( 敬畏)하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지구가 건강해야 인간도 산다.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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