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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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2020-05-07 (목) 김영자 / 포토맥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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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때가 되면 한가지 죄스러운 일이 떠오른다.
의문이망(倚門而望)이라는 사자성어는 대문에 기대어 서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덧 6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지만,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수업이 일찍 끝난 토요일 집으로 가는 나를 따라오면서 단짝 친구가 꼬셨다.(시골에서 통학하는 친구였다.) “우리 집에 같이 가자. 내일 단오절이니 행사를 하는데 널뛰기, 그네타기, 달리기가 있고 음식도 푸짐하게 차린데." 나는 솔깃했다.
널뛰기와 그네는 어릴 때 즐기던 놀이였다. 친구와 같이 집에 와서 엄마께 허락을 받았다. 일요일 저녁 어둡기 전에 꼭 돌아온다는 약속을 했다.

책가방을 던져 두고 사복을 갈아 입고 버스를 타고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시골의 저녁밥은 아주 맛있었다. 단오날 아침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11시부터 시작하는 단오절 행사에 신나게 어울리고 쑥떡도 실컷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구로 오는 시골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전화가 없던 그 시절 엄마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내일 아침 첫 버스로 가자는 친구 말에 체념을 하고 피곤함도 겹쳐 친구와 함께 그날 밤 꿀잠을 잤다. 그러나 내가 꿀잠을 잔 그 밤을 엄마는 딸을 기다리며 오만가지 걱정으로 기나긴 밤을 꼬박 세워버린 것이다.


하루 밤 사이에 딸을 반기는 엄마의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횅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얼마나 애간장이 타는 밤이었을까.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자식을 기다리는 그 심정을 알았으니 두고두고 죄스럽다.
엄마는 언제나 자식을 기다린다. 문제 많고 사고 많은 세상에 자동차가 두 다리인 이 시대엔 경찰차의 ‘앵앵’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엄마 저 집에 왔어요" 이 한마디가 있어야 세상 어머니들의 밤은 편안할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와 세상 사람들이 전쟁 중이니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의 노고는 얼마나 클까. 그 의료인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언니 우리 기도 합시다" 동생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가슴이 아려온다.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는 아들을 두고 있는 동생의 그 심정을 어찌 모르랴. 나는 간호사인 딸을 두었으니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행여 늙고 쇠약한 부모에게 전염될까 두려워한다.
보고 싶어도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하는 그 자식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뿐이다. 빨리 백신이 나오고 여름이 오고 환자들이 줄어들기를 학수고대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이지만. 이 시대의 어머니들은 집안에서 긴장의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영자 / 포토맥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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