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업계는 코비드-19 시대의 또 다른 일선이다. 보도된 대로 2분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뉴욕은 병원 영안실, 장의사, 묘지, 화장장 등이 시신 과부하를 겪은 지 오래다. 남가주의 사정은 어떨까. 물론 뉴욕에 비교할 바는 아니고, 업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불과 두 어 달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은 맞다.
LA의 한 한인 장의사는 하루 8건의 장례식을 치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날 하루 장례식장 소독만 8번을 했다. 아침 6시에 장례식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 유튜브 중계를 하느라 한국 시간에 맞춘 것이다. 업체가 생긴 후 처음 겪는 일들이다.
지금은 사망 원인이 코비드-19인 경우 사망 확인서에 ‘COVID-19’라고 명기돼 나온다. 이 장의사는 코비드-19 사망자가 지난 3월부터 늘기 시작해 지금은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알게 모르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숨진 한인들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심장이 좋지 않아, 심지어 관절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던 한인도 사망 원인에 코비드-19로 찍혀 나온 케이스들이 있다. 유족들은 황당할 뿐이다. 입원 전에 감염이 되었던 것인지, 입원 후 감염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인 란에 ‘호흡기능 상실’ ‘폐렴’ 등으로 적혀 나오는 것도 의심스럽다. “최근에는 사망 원인의 80% 이상이 호흡기 관련”이라고 한 장의업체 측은 전한다.
지난 3월에 연방 질병통제센터(CDC), LA카운티 공중보건국과 검시국, 장의업체 관계자들이 코비드-19 사망자의 장례 전범 등을 논의하기 위해 컨퍼런스 콜을 한 적이 있다. 이때 한 중국계 장의업체 대표는 일반 장의 절차에 따라 장례를 다 끝낸 뒤에야 코비드-19 통보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한 때는 이같은 늑장 통고가 한 둘이 아니었다. 지금도 시신 인수 때까지 사인이 분명치 않은 경우들이 있다. 이럴 때 병원이나 양로병원에서 시신을 넘겨받게 되면 일단 코비드-19로 추정하고 장의 절차를 진행한다. 그래야 시신과 불필요한 접촉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족들이 항의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임을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한다.
안타까운 사연들은 많다.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얼굴 한 번 뵙지 못하고 보내드려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타운 양로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지난달 말에 여윈 딸도 그런 이들 중 한 사람. 전날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오래 전부터 양로원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운구돼 나올 때 얼굴이라도 뵈려고 새벽부터 양로원 문 밖을 지키고 섰다. 장의사측도 시신에 접근을 허용할 수가 없었다. 딸은 오열했다.
노환으로 집에 모시고 있던 80대 아버지가 돌아가신 한인가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태가 갑자기 악화돼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일손 부족으로 30분이면 된다던 인공호흡기 연결에 6시간 가까이 걸렸다. 가족들은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의사가 응급실 밖으로 나와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다음날 새벽 부친은 별세했다.
장의사를 통해 바로 장지로 모시기로 했다. 코비드-19로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장지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으로 제한됐다. 배우자와 4남매 내외를 빼니 손주는 대표로 한 명밖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 가족들은 차 속에 머물러있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의 기막힌 장례식 광경이다.
장례 일정도 며칠 기다린 후에야 잡을 수 있는가 하면, 원하던 관이 다 떨어진 경우도 있다. 대기 중인 시신이 많아서 닷새 후에 추가 시신을 받을 수 있다는 화장장도 있다. 사망 직후 이뤄지던 병원이나 양로원에서의 시신 운구를 위해 6시간을 기다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장례가 평소의 3배 정도 는 것 같다는 한 한인 장의사는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염과 방부작업 등 시신과 접촉해야하는 인력 뿐 아니라 모든 직원이 개인보호장비(PPE)를 갖추고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장의사에서 장례식을 하면 가족들이 고인의 얼굴을 뵐 수 있다. 이때도 사회적 거리는 엄수돼야 한다. 참석자는 10명으로 제한되고, 좌석에 앉을 자리가 표시돼있다.
공원묘지는 장의 전범이 조금씩 다르다. 한 때는 직원들이 시신만 인수하면 그것으로 마지막인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규정이 완화됐지만 어디나 참석 인원은 최대 10명, 매장 전에 고인의 얼굴을 뵐 기회는 없다고 보면 된다.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한 공원묘지는 장지 예배를 15분내 마치게 되어있다. 참석자 명단은 사전에 제출해야 한다. 한 천주교 묘지는 집례자 말고는 모두 뒤에 떨어져 있도록 한다.
한국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사정은 더 딱하다. 지난 1일 한국서 노모가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은 70대 LA 한인은 한국행을 포기해야 했다. 해외 입국자에게 적용되는 14일 강제 격리규정 때문이었다. 평소 1년에 한 번은 한국의 노모를 찾아봬왔다는 그는 막상 장례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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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