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뉴스 유통패턴
2020-05-07 (목)
조윤성 논설위원
1년 여 전 한국 언론들을 통해 “북한의 마약중독이 아주 심각해 최소 30%가 마약을 사용하고 어린이들까지 남용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특히 이 뉴스는 보수신문과 극우집단들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보도에는 북한에서는 6살 아이도 마약을 하고 학생들이 시험을 보기 위해 마약을 하기도 한다는 충격적 내용들까지 담겼다.
이 뉴스의 최초 발원지는 ‘북한인권정보센터’라는 민간단체가 북한 마약문제 세미나에서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발표가 나온 배경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고작 18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가 북한의 마약상황을 검증했다는 근거였다. 극소수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주민 30%가 마약에 중독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세미나에서 그렇게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 허무맹랑한 주장이 외국 언론의 보도과정을 거친 후 ‘역수입’되면서 한층 더 신빙성 있는 뉴스로 둔갑했다는 사실이다. 일부 한국 언론이 보도한 세미나 내용을 UPI 통신이 받아 쓴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 마약뉴스는 그럴듯한 뉴스로 둔갑해 한국사회에 퍼져나갔다. 최초 주장자가 외신보도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을 정도다.
마약전문가들은 한 사회 구성원의 3%만 마약에 중독돼도 그 사회는 정상적 기능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상식의 눈으로 보면 30% 마약중독이라는 주장은 누가 봐도 허무맹랑한 가짜뉴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믿을만한 뉴스로 포장돼 퍼져나간 데는 UPI 통신 보도의 역할이 컸다.
이런 패턴은 북한관련 뉴스의 유통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한동안 한국과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정은 위중설·사망설 관련 뉴스도 바로 이 패턴을 따르고 있다. 지난 4월21일 “김정은이 수술 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정부가 주시 중”이라는 뉴스를 CNN 방송이 타전하면서 세계가 들썩거렸다. 특히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온갖 추측과 선정적 보도들을 쏟아내면서 김정은 신변 이상설을 증폭시켰다.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는 데일리 NK라는 한국의 보수성향 매체가 있었다. 이 매체는 지난 4월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이용해 김정은 신변 이상설을 제기했다. 김정은 신변 이상설이 급속히 탄력을 받은 것은 바로 다음날 CNN이 이 매체를 인용해 관련 보도를 하면서부터였다. 한국 언론들은 다시 이를 받아 연일 김정은 관련 뉴스들을 쏟아냈고 그의 신변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게 확인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온갖 오보와 가짜뉴스들의 퍼레이드는 계속됐다.
한국 언론의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은 특히 북한관련 보도에서 거의 일상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폐쇄적인 북한은 그 실상을 취재하기가 가장 어려운 체제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단편적 정보들에 의거해 보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북한 관련 뉴스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근본적 반감과 남북 화해노력이 흔들리기를 바라는 강렬한 소망은 정말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는 근거 없는 내용의 뉴스보도로 쉽게 이어지곤 한다. 오보를 내더라도 책임질 일 없고 언론중재위를 통한 정정요청이 들어올 걱정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이런 보도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관련한 잘못된 보도나 가짜뉴스는 자칫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고 국익을 해칠 수 있다, 특정 언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고 추종자들 입맛에 맞추려 먼지처럼 가볍게 다뤄도 되는 사안이 아니다. 좀 더 진중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언론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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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