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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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는 어떻게 될까

2020-05-05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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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길 미러클 마일에 위치한 씨메이 갤러리(CMAY Gallery)는 2월29일 새 전시회의 오프닝을 연 지 2주만에 코비드-19 폐쇄령에 따라 문을 닫았다. ‘더블 테이크’(Double Take)란 제목의 그룹전은 4월4일까지였는데 지금도 작품들이 벽에 걸린 채로 갤러리 문이 닫혀있다.

7월까지 3개의 전시가 취소됐고, 9월 전시는 아직 홀드하고 있는 상태다. 9월은 화랑들이 메인쇼를 여는 가장 좋은 달이기 때문이다. 메이 정 관장은 “지금으로선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모든 게 공중에 떠있는 상태”라고 전하고 “미술계는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사정이 다 똑같다”고 말했다.

“몇 달만 수입이 없어도 견디지 못하는 곳이 화랑계입니다. 꽤 이름있고 오래된 갤러리도 어려운 시기에는 얼마 못 버티고 문 닫는 걸 보게 되죠. 아마 이번엔 더 힘들거예요.”
코로나 사태 이후 각계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미술계도 크나큰 지각변동이 불가피해 보인다. LA타임스가 남가주의 크고 작은 갤러리 35곳을 조사한 결과 25%(9개)가 빠른 시일 내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올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했고, 14%(5개)도 폐쇄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것은 “프랑스 화랑의 3분의 1이 급격한 수익악화로 올해 말까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프랑스의 프로페셔널 아트갤러리위원회의 조사결과와 비슷한 수치다.


남가주 갤러리의 89%가 팬데믹으로 판매가 감소했고, 46%는 거래중인 세일즈가 취소됐으며, 일부는 할인된 가격에 작품을 팔고 있다. 당연히 거의 모든 갤러리가 스태프를 감원하거나 일시해고 했다. 셧다운이 해제되고 다행히 살아남는다 해도 전시공간을 줄이거나 렌트가 싼 곳으로 옮기는 화랑이 많아질 것이다.

갤러리 산업의 위축은 곧 화가들과 관련업계에도 직격탄이 된다. 화가들은 작품 판로가 줄어 생계가 불안해지고 연쇄적으로 포장, 운송, 스토리지, 설치, 보존관리, 사진, 프레임 산업 모두가 타격을 입게 된다. 중소업체는 죽고 거대기업들의 독주가 예상되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화랑 인더스트리도 결국 작은 곳들은 사라지고 글로벌 메가 갤러리들이 화단을 장악하는, 건강하지 않은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가고시안(Gagosian),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 블럼 앤 포(Blum & Poe) 같은 화랑들은 고객이 부자콜렉터들이고, 세계 여러 도시에 지부가 있으며, 블루칩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기 때문에 전시장 문을 열든 안 열든 작품 판매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투자형 미술이 아닌 예술적 가치를 지켜온 로컬 갤러리들은 한동안 회생이 힘들 것이다.

미술계의 위축은 상업화단에 그치지 않는다. 비영리기관인 미술관과 박물관들도 이 위기를 피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국제미술관학회는 현재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 뮤지엄의 95%가 문을 닫았는데 이중 10개 중 1개는 다시 문을 열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뮤지엄연맹(American Alliance of Museums)은 지난 3월 “당장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약 30%의 뮤지엄이 코로나 위기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유럽 뮤지엄 네트웍도 유럽의 41개국 가운데 30여개국을 조사한 결과 영구폐쇄가 예상되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100년 역사를 가진 런던의 ‘찰스 디킨스 뮤지엄’ 같은 곳조차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유럽의 뮤지엄들은 정부의 지원과 관광수입으로 경기 침체기에도 버틸 수 있지만 미국의 뮤지엄들은 정부 보조가 거의 없고 관광객도 많지 않으며, 후원자들의 기부금에 많이 의존하는 구조라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은 자명하다.

또 하나 예상되는 중요한 변화는 현대 미술 산업의 중요한 플랫폼인 아트페어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1월에만 해도 남가주에서는 프리즈LA(Frieze LA)를 비롯해 LA아트쇼와 펠릭스 등 수많은 아트페어가 열려 세계각지의 갤러리스트, 작가, 큐레이터, 콜렉터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 바로 직후부터 아트바젤 같은 대형 아트페어가 줄줄이 취소되고 연기되면서 글로벌 미술시장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문제는 행사 취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앞으로 한동안 비행기 여행 자체를 꺼리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한 달이 멀다하고 세계 주요 아트페어를 돌아다니던 화상들, 이리저리 비행기로 실어나르던 수많은 작품들, 관람과 구매를 겸해 잦은 해외여행에 나섰던 콜렉터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상업미술계는 그 기반이 중심부터 무너질 수 있다.

그러면 이제 화단은 어떻게 될까?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모두 처음 가보는 길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 하나는 다치지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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