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미국의 차이니즈 바이러스
2020-05-05 (화)
허경 (UC버클리 학생)
2017년 미투운동을 시작으로 미국의 방송과 미디어는 지난 3년간 페미니즘과 여성서사로 가득했다. 몇 년간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오션스 영화 시리즈가 산드라 블록을 선두로 ‘오션스 8’로 돌아오고, 디즈니의 ‘인크레더블’은 14년만에 원치 않는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미스터 인클레더블 이야기의 속편으로 돌아왔다. 여성 인권문제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러한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여성 인권운동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양성을 강조하는 미국 내 미디어의 방향이 아시안들을 향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버벅거리는 영어, 촌스러운 브릿지 헤어, 소심하고 수동적인 말투, 이 모두 미국 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고정 관념이다. 하지만 지난 2년 사이에 아시아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가 미국에서 가장 힙하고 쿨한 문화로 인정받아 이러한 고정 관념을 깨고 있다. 케이팝이 북미에서 주류 문화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BTS와 블랙핑크의 파급력은 이례적이다. 미국에서도 탑스타만 출연한다는 토크쇼에 출연하고 코첼라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넷플릭스에서 한국계 미국인 여고생의 로맨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대흥행을 거두며 후속편까지 제작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 4관왕을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의 맨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에서 한국인이 폭행당해 턱이 탈골되는 피해를 입는 등의 매일같이 새로 올라오는 ‘아시안 혐오’ 관련 기사를 보면 참 안타깝다. 미국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임을 자부하지만, 결국 사회 깊숙이 내재된 인종 차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아무리 한국의 케이팝 문화에 열광한다고 하여도, 길거리에 보이는 마스크를 쓴 아시안들 그 자체를 ‘차이니즈 바이러스’로 경멸하는 이중적인 시선에는 변함이 없다.
혐오와 폭력은 절대 전염병에 대한 불안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미국이 ‘완전한 평등’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관련 범죄들에 함께 분노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허경 (UC버클리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