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미국이 왜 이래?”

2020-04-30 (목) 안상호 논설위원
크게 작게
병원 중환자실(ICU)에 중증 코비드-19 환자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인 2세 간호사가 이들을 돌봤다. 닷새 후인 지난달 28일부터 간호사에게 감염 증상이 나타났다. 근육 통증과 함께 열이 나고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우려했던 의료진 감염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30대초의 이 간호사는 신혼이었다. 사흘 뒤에는 동갑인 남편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고열과 설사,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하며 이들 부부는 애나하임의 아파트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남편의 오한이 심해지고 손끝이 파래지는 증상까지 오자 급히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로 갔다. 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부부는 근 2주를 꼬박 앓았다. 집에 갇혀 밤에도 자고, 낮에도 수시로 자는 것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 힘이 없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발병 후 2주 만에 출근했다. 하지만 다시 열이 100도 가까이 오르는 등 정상근무가 힘들었다. 일주일을 더 쉬고 나서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연방 공무원으로 재택 근무 중이던 남편은 그새 10파운드가 빠졌다.


딸 부부의 투병을 지켜봐야 했던 엄마는 “젊은 사람도 해야 할 고생은 다 하더라. 생각보다 독했다.”고 투병 관찰기를 전한다. 60대 은행원인 엄마는 딸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2번을 만난 일이 있어서 2주를 자가격리 했다.

딸이 근무한 병원은 남가주의 대표적인 병원 중 한 곳. 감염 당시 근무 여건이 가족들을 기막히게 했다. 코비드-19 환자를 치료하는 ICU 간호사에게 마스크 하나로 이틀을 쓰게 했다고 한다. 머리에 쓰는 캡이 없었고, 발목이 다 드러나는 가운을 입고 일해야 했다.

이 집 식구들은 솜씨 좋은 친지가 만든 수제 마스크 50여 개를 나눠 썼다고 한다. 이를 안 간호사 딸은 머리에 쓰는 캡도 하나 만들어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머리카락에 묻었던 바이러스가 옮긴 건 아닐까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두고 가족들 사이에 “미국이 왜 이래?” 하는 말과, “미국이니까 그렇지”하는 빈정거림이 오갔다.

병원에서 퇴근하면 차고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출근하는 의사도 있다고 한다. 젖먹이 아기가 있는 이 젊은 의사는 식구들의 감염을 우려해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의료 요원들에게 보호장비 부족 문제까지 거론된다는 것은 딱한 노릇이다.

이 병원의 열악했던 방호장비(PPE) 문제는 이제 해결됐을 것으로 믿고 싶지만, 실상은 병원 마다 천차만별이다. 가운 등 보호장비를 이제 한 달치는 확보해 놓았다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아직 이 문제로 고심 중인 곳도 있다.

남가주의 또 다른 한 대형병원은 얼마 전 마스크를 납품받았는데 모두 결함이 있는 제품으로 밝혀져 내부적으로 소동이 벌어졌다. 한인 의료진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텍사스의 한 한인 무역업체는 한국서 들어오고 있던 N95 마스크 1,000개를 모두 LA에서 바로 이 병원으로 향하게 했다. 이 업체 측은 기부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고사했다.

병원은 물론 정부 기관끼리도 방호장비 확보전은 치열하다. LA시가 마스크 100만개를 사기로 하고 체크까지 끊었지만 중간에 연방정부 기관인 재난관리청(FEMA)이 가로채 가버렸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세금보고 시즌에 경기부양 체크 업무까지 겹쳐 일손 부족이 심각한 연방 국세청(IRS)은 이번 주에 1만명의 직원들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단 개인별로 모두 마스크를 준비해와 착용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IRS 내부 메모에 따르면 마스크가 준비 안 된 직원은 강제 귀가될 수 있다고 했다니 믿기가 어렵다.

미국의 코비드-19 확진자는 드러난 사람만 이제 100만명을 넘었다. 전세계 확진자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8일 현재 사망자는 5만8,300명. 10년 이상을 끈 월남전에서 숨진 미군의 숫자를 넘어섰다.

가중되는 경제난으로 인해 각종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이제야 코비드-19가 실감된다는 한인들도 있다. 가까운 이들의 감염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LA 한인 중에서 사망자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젊고, 건강하다고 코비드-19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젊어도 증상이 나타나면 생고생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연로한 분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최일선에서 이 감염병에 맞서고 있는 의료진도 생각해야 한다. 코비드-19에 감염된 캘리포니아의 의료 관계자만 이미 4,000명을 넘었다고 통계는 전하고 있다.

<안상호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