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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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나르시시스트

2020-04-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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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애’로 흔히 번역되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수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그의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이를 지적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비상식적인 언행들을 통해 자신이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왔다.

누구나 조금씩은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정도다. ‘사회화’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다른 이에 대한 배려가 균형을 이루면 바람직한 나르시시즘, 즉 건강한 자기애가 자리 잡지만 그런 균형이 깨지면 그것은 병적인 자기애가 돼 버린다.

이런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에게 추앙받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구가 두드러진다. 그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자기 자랑과 외모 가꾸기 등)에 몰두한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자화자찬을 멈추지 않았다. 백악관 기자회견 중 갑자기 자신의 코로나19 대응을 자랑하는 3분 분량의 동영상을 틀어 일부 매체는 중계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또 트위터를 통해 자신을 향한 비판기사에 독설을 퍼부으며 “나를 알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며, 아마도 첫 번째 임기의 3년 반 동안 역사상 그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은 것을 이뤄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허약한 자아와 불안감의 또 다른 얼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누르려 든다. 그러니 소신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곁에 남아 있기가 힘들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앨러지 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트럼프 의중과는 다른 소신 발언을 공개적으로 쏟아내다 잠시나마 경질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 역시 코로나19의 동절기 재확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인터뷰를 했다가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공개해명을 강요받는 수모를 당했다. 코로나19 같은 초비상 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견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조언임에도 트럼프는 자신의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력자가 병적인 자기애에 빠져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권력자, 이런 지도자 주위에서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참모와 전문가 그룹은 찾아보기 어렵다. 듣기 좋은 소리나 하는 무능한 인사들만 자리보전을 한다. 그러면서 적절한 대응 기회를 놓치게 되고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대중의 관심과 미디어 노출에 집착하면서 자신이 항상 무대의 중심에 서려고 하는 나르시시스트 지도자는 위기대응에 가장 부적합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19 재난은 공중보건의 위기이자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위기는 언제 완전히 종식될지 알 수 없지만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는 국민들의 선택으로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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