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원래 13개 식민지(colony)가 합쳐서 생긴 나라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들은 주(state)로 바뀌고 1781년 ‘연맹 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에 의해 첫 연방정부가 탄생했지만 그 힘은 매우 약했다. 주권은 각 주에 있었고 연방정부는 조세권도 자신이 만든 법을 집행할 능력도 없었다. 그렇게 된 것은 영국 정부의 횡포에 진저리가 난 식민지인들이 다시는 강력한 중앙 정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1786년 보스턴에서 대니얼 셰이즈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바뀌었다. 셰이즈는 빚에 쪼들린 농민들의 지지를 업고 세금과 채무 납부를 거부하고 법원을 점거한 후 무기고를 점령하려 했다. 이 반란은 주 정부가 조직한 민병대에 의해 진압되기는 했지만 이처럼 무력한 연방정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1787년의 현행 연방 헌법이다.
이 헌법은 연방정부에게 독자적인 행정부와 조세권, 연방 사법부 등을 줬지만 강한 정부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1791년 제정된 수정 헌법 10개 조항이며 그 중에서도 10조다. 수정 헌법 10조는 “헌법이 연방정부에게 부여하지 않았거나 주정부에게 금지하지 않은 권한은 주정부나 국민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헌법은 연방정부가 권한을 행사하는데 “필요하고 적절한 법”을 만들 권한이 있으며 주정부 간에 상행위를 규제할 수 있다고 명시해 연방정부가 주정부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주정부 소관이냐 연방정부 소관이냐를 결정할 때는 경우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가 정점을 지나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감소하면서 언제부터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주 경제 재개에 관해 자신에게 “총체적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다 하루 만에 주지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물러섰다. 좌우나 민주 공화 양당을 불문하고 거센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헌법이 방역과 관련해 연방정부에 전권을 준 일도 없고 이 문제는 ‘필요 적절’ 조항이나 ‘주간 상행위’에 해당되는 것도 아니어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더군다나 미국 50개주의 코로나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 인구 2,000만의 뉴욕은 주민의 1.2%가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는 반면 인구 50만의 와이오밍의 경우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전체의 0.1%도 안 된다. 인구 4,000만의 가주의 경우 환자 비율은 0.08%에 불과하다. 주마다 이처럼 사정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중앙 정부가 결정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조기 재개를 원하는 쪽은 길게 봉쇄를 연장하면 경기 회복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실업이 장기화되면 우울증과 약물 중독으로 인한 자살도 늘기 때문에 인명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봉쇄 연장 쪽은 확진자가 조금 줄었다고 봉쇄를 풀었다 재발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회복 불능 사태에 빠질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양쪽 모두 일리 있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수치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자기 복제 비율을 일컫는 R0(R naught)라는 수치다. 이 수치가 1이 넘어서면 코로나는 계속 퍼져 나간다. 1 이하로 떨어지면 줄다가 결국 소멸한다. 지금 미국에서 코로나가 가장 많이 퍼진 뉴욕의 R0는 0.9다.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셈이다.
유럽 질병예방통제국은 코로나를 그냥 방치했을 때 이 수치는 3.28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의 진원인 중국 우한의 초기 R0가 3.86이었다. 그러다 경제 봉쇄를 단행해 이를 0.32로 떨어뜨렸다. 우한에서 코로나는 일단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와 사망자 비율이 가장 낮은 독일의 R0는 모두 0.8을 기록했다. 독일은 이번 주부터 소규모 상점의 영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상적으로는 코로나 소멸이 이뤄진 후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럴 경우 치러야할 희생이 너무 크다. 코로나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 의심자에 대한 테스트를 늘리고 마스크와 거리두기를 유지하되 가급적 빠른 시일 내 단계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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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