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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이야기

2020-04-19 (일)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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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룡 칼럼

오늘은 라면 이야기를 좀 하겠다. 라면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 때 한인사회의 사재기 품목 중 하나가 되었다. 값도 저렴하며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은 간식으로만이 아니라 식사로도 제법 애용된다. 오래 전에는 종류가 몇 가지 안 되었는데 요즈음에는 다양해 이름도 다 모를 정도이다. 내가 라면을 먹어 본 것은 제법 된 것 같다. 맛은 좋지만 건강한 음식은 아니라고 알려져 나로서는 피해야 하는 식품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1973년에 나머지 가족들 보다 1년 정도 먼저 이민 온 아버지는 라면 애호가이다. 아니 애호가라는 표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이민 온 후 지금까지 매일 아침 식사는 라면이다. 라면 안에 계란을 보통 한 두 개나 가래떡 썰은 것 몇 쪽 넣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추가하지 않는다. 가끔은 아침 뿐 아니라 점심도 라면으로 한다. 그다지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고 말씀 드려도 소용 없다. 왜냐하면 올해 87세인데 거의 50년을 매일 먹어도 이렇게 버젓이 살고 있는 것 보면 그렇게 나쁜 음식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에 대한 반박 논리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고혈압이 있는 아버지에게 염분 섭취를 줄여야 하고 그렇기에 라면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다. 나와 논쟁을 즐겨 하는 아버지는 라면의 염분 함유량이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그래서 라면 겉 봉지에 적혀 있는 성분 함유량 표기를 같이 검토했다. 함유량은 하루 섭취 적절 정도의 백분율로 표기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는 라면 봉투에 적힌 염분 수치는 40%를 초과했다. 그 숫자를 보던 아버지는 나머지 두 끼에서 60% 미만으로 조절하면 되니 상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함유량 수치는 라면 한 봉지를 2인분으로 간주한 계산이기에 결국 라면 한 봉지를 다 먹는 경우 거의 90%가량이 된다고 하자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라면 한 봉지를 2인 분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라면을 포기할 수 없기에 그 후로는 스프를 절반이나 1/3 정도 줄이는 것으로 했다. 처음에는 싱겁다고 했지만 점차 익숙해져서 이제는 스프를 더 넣으면 오히려 짜서 못 먹겠다고 하신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기억도 난다. 학교에 간식으로 라면을 챙겨갔다. 밤에 공부하다 출출할 때 하나씩 끓여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혔다. 당시 3명의 백인 룸메이트 모두 처음에는 신기한 듯 쳐다만 보다가 한 가닥씩 맛을 본 후 나중에는 돈을 줄테니 아예 한 봉지씩 끓여 달라고 했다. 그 때 내가 값을 제대로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단순하게 라면의 원가만 계산했더니 한 봉지에 25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룸메이트들은 당연히 부담 없이 한 봉지씩 주문 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내가 아껴 먹어야 했던 라면이 동나는 데에는 과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면 값을 올려 받을 수도 없고 갑자기 더 이상 나눠 먹지 않겠다고 할 수 없어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라면을 나눠 먹는 게 라면 주인으로서는 항상 쉽지 않음을 경험했으면서도 라면 주인을 괴롭힌 적도 있다.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였다. 당시 학부에 한인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형이나 오빠로 불리는 선배였다. 그 후배들 중에 기숙사에 살면서도 학교 식당 음식 대신 본인이 요리를 하거나 외부에서 사 먹는 남자 후배가 있었다. 나는 그 후배의 방에서 종종 머물렀는데 그 후배의 주식이 라면이었다.

라면이 조리가 간단해 시간도 별로 없는 그에게는 편했지만 비용이 적게 드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한 그에게는 비용 절감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밤에 라면을 끓일 때 그 후배 뿐 아니라 다른 한인 학생들이 모여 들어 라면 한 박스를 쉽게 거덜내는 것이었다. 그 때 나이 먹은 선배라는 나도 주책 없이 동참했던 것은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라면이라도 가끔 한 두 박스씩 사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지금도 어쩌다 그 후배를 보게 되면 그 때의 미안한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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