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은 밥만 먹던 곳이 아니었다. 그런 깨달음이 새삼스럽다. 밥을 먹으면서 사람을 만났다. 식당이 문을 닫으니 그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었던가.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으니 그 소중함이 더 절실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둘일까 싶다.
그 식당들이 살아남기 위한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사실상 영업을 중단한 식당의 직원들 중에는 생계 대책이 막막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업수당 신청들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이달부터 지급되는 주 600달러 연방 보조금은 각 주 정부에서 실업수당을 1달러라도 받는 사람은 모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주정부 실업 보험금은 일주에 최고 450달러이나 평균 지급액은 340달러 정도. 여기다 7월 말까지 나오는 연방정부 지원금을 더하면 넉달 간은 주 평균 940달러가 된다. 발등의 불을 끄는데 요긴할 것이다.
문제는 식당 주인들이다. 원래 투고가 많았던 곳은 좀 낫다. 남편이 주방장, 아내가 홀을 맡고 있는 작은 식당들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올림픽가의 한 한식점은 부부가 보조 한 사람만 데리고 투고 손님으로 이 시기를 넘기고 있다고 한다.
가장 난감한 곳은 대형 음식점, 그중에서도 구이 전문집들이다. 타운 웨스턴가의 한 식당은 사이트에 테이크 아웃은 한다고 나와 있으나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받는 사람이 없다. 영업을 잠정 중단한 것인가. 구이 손님이 대부분인 또 한 식당은 5달러99센트짜리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메뉴를 추가해 투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식당은 저녁에 두 세 사람이 식사하면 쉽게 100달러가 넘던 곳이다.
남가주와 타주에 30여 개의 체인점이 있는 한 대형 코리언 바비큐 식당은 정육점 겸업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너 덧 종류의 재고 육류를 2파운드 냉동 팩으로 팔다가 최근 품목이 대폭 확대됐다. 오렌지카운티 등 4개점에서 하는 테이크 아웃은 냉동 육류와 해산물에다 잡채 등 반찬류, 주류까지 더해 메뉴가 20종이 넘는다. 생고기와 함께 구워서도 판다고 한다. 이 바비큐 식당은 예약을 받지 않는 것이 손님들의 불만일 정도로 줄을 서던 집이었으나 코비드-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생존 모드로 전환한 곳은 이들 한인업소뿐 아니다. 다인-인 매출이 30% 정도라는 베이커리형 카페인 파네라도 식품점 겸업으로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 체인 스토어가 2,000개가 넘는 파네라는 빵 수프 등과 함께 블루베리 아보카도 등 채소와 과일에다 유제품까지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샌드위치 체인점 서브웨이도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5개 주, 250개 매장에서는 그로서리를 팔기 시작했다.
전미 식당협회는 지난 3월 이후 업계에서 사라진 일자리가 300만 개, 매출액 감소는 2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각 업소가 생존을 위한 각개전투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음식을 통해 전파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시는 물이나 육류를 통해서도 전염된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코로나바이러스는 보통의 조리온도에서 모두 죽게 된다.
컨슈머 리포트지를 인용한 한 보도는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 음식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전한다. “마켓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것보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주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든다. 물론 조리 과정과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직장인들에게 식당은 점심시간에 깨소금 같은 뒷담화를 나누던 곳이기도 했다. 뒷담화를 하면서 은밀한 공범자가 되거나 잠시 동지가 되어 연대감을 느끼던 곳-. 한 실험에 따르면 남의 험담을 하면 ‘쾌락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분비돼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식당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던 곳이었다. 갈 수 없으니 아쉬움과 고마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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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