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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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숨통 터주는 구호활동

2020-04-17 (금) 문태기 OC지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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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긴박했던 92년 4.29폭동, 94년 노스리지 대지진을 겪었다. 한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역사적 사건과 천재지변의 현장을 목격했지만, 요즈음과 같이 힘든 시기가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 19’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지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을 끼고 사무실이나 집에 들어와서도 손등이 갈라질 정도로 자주 손을 씻는 방법밖에 없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지만 사람을 만나도 서로서로 경계하면서 6피트 떨어져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매너가 되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 옆에는 가기를 꺼린다. 간혹 기침 또는 재채기를 하는 사람과 마주치면 신경이 곤두서 진다.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할 때도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마스크, 고무장갑, 세정제, 클로락스 페이퍼 등을 건네주면 너무나 반가워한다. 얼마 전 같았으면 ‘무슨 이런 사람이 있느냐’라고 속으로 욕했을 물품들이다.

모두 집에만 있으니까 간혹 지인에게 전화를 하면 끊을 줄 모르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너무나 심심하던 차에 전화가 왔으니 수다를 떨 수밖에 없다. 이 중에는 시간 때우려고 본보를 2~3차례 읽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평생 해보지 않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그룹 화상 통화도 접하고 있다. ‘줌’(ZOOM)이라는 화상 통화 회사의 이름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한인 단체들은 정기 모임도 회원 각자 집에서 화상 통화를 이용하고 있다.

투고 커피 샵에서는 상당수의 종업원은 거스름돈을 손으로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박스에 담아서 준다. 불과 2~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을 당했다면 그 커피 샵은 다시는 가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게 거스름돈을 받는다.

또 식당들은 투고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넓은 탁자를 놓아두고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형 마켓에서도 6피트 거리를 유지하도록 흰 페인트로 간격 표시를 해놓고 플라스틱 유리로 가리개를 쳐놓은 업소들도 있다. 고객들이 혹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매장이나 사무실에서 갑갑한 마스크를 쓰고 경계심을 갖는다.

유명한 목사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도 조문을 하러 갈 수 없다. 화상을 통해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하는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부활절 예배도 차 안에서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모습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감을 자주 가져야 한다는 통상적인 관념이 코로나로 인해서 일시적이겠지만 완전히 붕괴된 라이프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 격리’ 등 전혀 익숙하지 않은 말들과 함께 생활하는 지금 너무나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불안 초조하고 막막하다. 코로나바이러스 형국이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는 긴 터널 안에 놓여있는 기분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OC 한인사회는 가만히 있지 않고 있다. 소외되거나 어려운 한인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전달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마스크, 장갑으로 중 무장하고 필요한 한인들에게 쌀, 마스크, 세정제 등과 푸드를 나누어 주고 있다.

4.29폭동이나 노스리지 지진 후 피해자들에게 현금과 생필품을 나누어주는 등 구호활동을 하는 것과 지금의 생필품 전달 행사와는 사뭇 다르다. 자원봉사자들은 언제 어떻게 바이러스에 노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건강’을 담보로 남을 돕고 있는 셈이다.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힘을 합쳐서 서로를 도와온 한인사회는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매주 시니어와 저소득층을 돕는 이벤트들이 커뮤니티에서 열리고 있다. 답답하고 갑갑한 이 상황에서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연결하는 한인 커뮤니티의 구호활동은 막힌 숨통을 조금이나마 터주고 있다.

<문태기 OC지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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