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가 맞는 말이 되었다. 하나로 뭉쳐있던 지구가 일일생활권에 든 지 오래인데 이제는 100년이 흐른 뒤에나 다시 일일생활권이 될 듯하다. 모든 나라가 일제히 빗장을 걸었다. 자기 나라에서만 있으라 한다. 또 집에만 머물라며 ‘Stay-at-Home'만을 외쳐 된다. 정상적인 생활권으로의 진입은 상상할 수 없을 것처럼 모든 게 멈춰버렸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뭉쳐야 산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아마 전시 중에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는 가정에서의 단합을 강조하는 말이었고 나아가 정당이나 정치적인 발언에서도 빠지지 않는 ‘필수 구호 아이템'이었다. 또 군대에서는 군기를 잡는 언어로 이 말 만한 게 없었을 것이다. 학교나 학급의 단합을 위하거나 나처럼 타국에서 사는 한국인끼리의 단결어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 앞으로는 절대 쓸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꽃미남’이나 ‘꽃중년’ 등의 신조어처럼 코로나 19 이후로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말이 생명의 구호가 될 것이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도 있다. 그 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따로 더 따로' 아니면 ‘따로 또 따로' 식으로. 재미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따로국밥'이라는 말도 있다. 재미있는 국밥 이름이지만 코로나 시대의 음식 이름으로는 최고이지 싶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다음 포털 사이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Daum’의 영문 알파벳을 하나하나 띄어쓰기한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다음에 보자'라는 말로 자가격리를 부추겼다.
맥도널드의 심볼인 노란 모자를 띄어 놓았고, 구글의 알파벳 영어도 떨어지는 영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알렸다. 아우디 자동차는 겹쳐있던 4개의 원을 띄어 놓았고, 이베이 또한 글자 사이의 간격을 두어 모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도록 했다. 잘하는 일이다.
시신을 거리에 방치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러다 24만 명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불안에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마스크나 방호복이 없다는 의료진들의 아우성이 들려오고, 의료진마저 코로나 19 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냉동 차량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과 그 시신을 싸는 바디백(Body Bag)도 동이 났다는 말도 들려온다. 사후에 처량함까지 더하는 사진들마저 인터넷의 전파를 타고 집에만 은거하는 사람에게도 전해 온다. 죽음을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 보내야 하는 그 가족들의 슬픔을 어찌 감당할까? 뭉치면, 당연히 잘 사는 줄 알았다. 단 한 번이라도 뭉치면 오히려 죽는다는 상상을 해보았을까?
눈을 조그맣게 굴려 뭉치면 단단하고 커다란 눈사람이 된다. 그 이미지로 뭉침의 단결을 외쳐왔고 한 명이 하지 못하는 일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못 하는 일이 없다고 배워왔던 우리가 아닌가? 그렇게 살지 않는 미국이나 유럽의 개인주의를 얼마나 비난했던가? 그런데 이제는 뭉치면 다 죽는다. 흩어져야 산다니 어불성설이다. 사회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도 이젠 누구나 이미 알고 있었던 말인 듯 행여 누가 내 옆에나 내 뒤에 있을까 불안하다.
미국은 매너의 나라다. 남과 살짝 부딪힌다거나 살짝 스치려는 몸짓만으로도 ‘쏘리’를 연발하는 나라다. 그렇기에 지금의 거리 두기가 그다지 생소하진 않다. 그래서 정이 없었다. 싹뚝 잘린 단무지 같은 냉정함이 있어서 그걸 이기주의라 칭했다. 세월이 흐르니 나 또한 이들의 몸짓이 더 이상 단절의 의미로 다가오진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 가면 내 발을 밟아도 그저 힐끗, 마트에서 유심히 물건을 찾고 있는 좁은 통로임에도 내 앞을 그냥 휙 지나치며 옷깃이 스쳐도 그저 힐끗 보는 한국 사람들의 매너에 고개를 갸우뚱해지고 있을 때이다. 그쯤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은 한국도 180도 상황이 바뀌었다.
스치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버스에서 앞사람이 잔기침만 해도 뒷사람은 몸을 자동으로 뒤로 젖히고, 그 앞사람은 고개를 더 앞으로 숙이는 자동반사적인 상황이 되었단다. 부딪치기는커녕 미국 사람처럼 스칠까 봐 노심초사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한 번도 변치 않았던 말들이 뒤집어져야 진리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이 어떻게 그전과 같을 수가 있을까? 코로나 19가 모든 걸 바꾸어버렸다.
모든 게 멈춰버린 지금이 바뀔 시점이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뉘어야 한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보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숨죽이고 서 있다.
우리는 코로나 19 사태를 겪는 첫 번째 인류다. 세월이 많이 흘러 코로나 기원후 2000년쯤이 되어 지금처럼 모든 게 멈춰버린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떠한 말이 뒤집어져 진리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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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