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며 밤새 끼고 있었던 이어 플러그를 뺀다. 보통은 비행기 안에서 쓰려고 사놓은 것들이지만, 요즘은 잠들기 전 귀마개는 필수가 되어 버렸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뉴욕 퀸즈에서는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의 사이렌이나 물자수송을 위한 헬리콥터 소리가 끊이지 않고, 특히 적막한 밤에는 그 소리가 크게 울리기에 귀마개가 없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의 일상에 완전히 들어온 이후로 생겨난 변화는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침이면 지난 24시간 동안의 코로나바이러스 뉴스를 확인하면서 지인들에게 온 안부 문자에 답을 한다. 며칠 전 안부를 물으려 이메일을 보냈던 학생에게서 병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테스트를 거부당해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는 답을 듣고, 의사와 간호사를 가족으로 둔 학생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냐고 묻는다.
학생들과 수업을 시작하며 서로 별일이 없는지, 평소에 묻는 그것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어본다. “그 친구 삼촌이 돌아가셨대요” 한 학생이 나에게 채팅창을 통해 몰래 알려준다. 나는 잠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몰라 멈춰서고 만다. 서로에게 보내는 이메일 인사의 시작과 끝맺음에서 부디 무사히 지내자고, 우리는 그저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서로의 안녕을 빈다.
이렇게 불편하고 어려운 감정을 되뇌일 때마다 이 불확실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생각한다. 그렇게 또 불안에, 또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리고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지 않은 마음을 조금씩 달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모두가 그렇듯, 나 또한 불확실한 현재와 사는 법을, 그리고 그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의 순간들이 뒤틀어져 버렸을 때, 우리는 여러가지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평소에는 아무런 보잘 것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나의 매일을 얼마나 지탱해주고 있었는지, 이렇게나 쉽게 균열이 이는 일상에, 지금을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매일의 일상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수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일상의 모퉁이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혼란 속에 빠졌어도 내가 견고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 가지--내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 그 마지노선은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그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는가, 아니 지켜낼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불확실한 매일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성취한 무언가라는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하고 경이롭다.
이 팬데믹이 끝나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때까지 나의 일상을 얼마만큼 지켜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얼굴로 서로를 대하게 될까? 이 혼란한 상황을 끝내고 난 뒤 우리는 어떤 것을 가치라고 생각하게 될까?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이었으며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게 될까?
이 질문들을 마음에 담고 오늘을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할 일을 체크한다. 열심히 밥을 짓고, 운동을 한다. 뒤뜰 나무에 핀 봄꽃을 보고 불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둔다. 이 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시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차근차근 생각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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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