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둘러싼 천년고찰, 속세에 병든 마음 어루만지네
2020-04-10 (금)
삼척=최성욱 기자
▶ ‘삼척 10경’ 쉰움산 천은사
▶ 고려 때 이승휴 ‘제왕운기’ 산실, 20분 남짓 전나무숲 산책 묘미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쉰움산의 천은사 극락보전과 5층석탑. [오승현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인 천은사(天恩寺)는 강원 삼척 쉰움산 초입에 자리한 작은 사찰이다. 전남 구례의 천은사(泉隱寺)가 더 유명하지만 동명의 절보다 70년이나 앞서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일대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승휴 유적으로 지정됐고, 아름다운 경관에 삼척 10경 중 하나로도 꼽힌다.
천은사는 ‘하늘의 은혜를 입은 절’이라는 이름과 달리 수차례 이름이 바뀐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다. 통일신라의 승려 두타삼선이 758(경덕왕 17)년 창건한 사찰로 백련을 가지고 이곳으로 왔다고 하여 처음에는 백련대로 불렸다. 고려 때는 이승휴가 관직에서 파직되자 이곳으로 내려와 지내며 용안당이라 이름 붙였고 ‘제왕운기’를 저술하면서 간장암으로 개명했다.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가 이곳에 절을 중건하며 흑악사라 불렀고 이후 인근에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무덤 준경묘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천은사로 불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나라 제사에 쓰일 두부를 만들어 올리던 조포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천은사로 가려면 삼척 시내를 벗어나 오십천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영동선 미로역 인근에서 우회전해 내미로천을 따라 곧장 직진하면 된다. 내미로 마을회관을 지나면 이때부터 천은사까지는 외길이다. 한참을 가다 산벚나무 꽃이 만개한 곳이 나오면 바로 천은사 초입이다. 사찰 바로 앞까지 도로가 연결돼 있지만 산사를 제대로 즐기려면 이곳부터는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는 게 좋다. 족히 백 년은 됐음 직한 고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용계(龍溪)의 시냇물 소리도 듣기 좋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속세와 극락의 경계가 되는 해탈교를 건너 당도하는 천은사 경내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범종각이다. 범종각 밑으로 연결된 돌계단을 올라서면 오층석탑이, 그 뒤로는 통일신라 승려 범일국사가 세웠다는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주변으로 설선당과 약사전·삼성각 같은 전각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작고 소박한 사찰은 쉰움산과 경계를 두지 않고 함께 어우러진다. 사찰 바로 아래에는 이승휴의 위패를 모신 사당 동안사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전각 대부분이 불에 타면서 천년고찰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첩첩산중 속 빼어난 자연경관은 수백 년 전 이승휴가 처음 찾았던 그대로다. 다시 내려올 때는 전나무숲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산림욕으로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산길이라고 하지만 그래 봐야 20분 남짓이다.
<
삼척=최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