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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산책] 칸츄리 팝의 대부 Kenny Rogers

2020-04-10 (금)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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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세계가 혼돈의 시간인 3월 셋째 주. 하얀 털보의 멋있는 사나이 ‘Kenny Rogers’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팝 음악계의 큰 별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신문과 방송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코멘트와 그의 약력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경력을 소개하고 그의 힛트 송과 그가 미국 대중 문화에 끼친 영향에 할애했다. 하지만 그 어느 언론에도 그의 최대 업적인 자선 콘서트 ‘We Are The World For Africa’ 에 관해서 언급한 곳은 없었다. 그가 팝 칸츄리 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1985년 당시 기아 선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프리카 빈민국에 세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기 위한 노력을 우린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국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상당한 팬을 갖고 있는 그는 허스키하면서도 묵직한 톤으로 노래를 하여 1억만장의 음반을 판매했으며, 히트 송은 약 120개 이상이었다.

‘Kenny Rogers’는 1938년 8월 21일 텍사스주 휴스톤에서 태어났다. 틴에이저 시절부터 포크 그룹 ‘The Scholars’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1966년 포크그룹 ‘The New Christy Minstrels'에 합류했다. 이들의 노래중 ‘Green Green’, This Land Is Your Land’ ‘Today’ 등이 국내에 소개되어 애창되었다. 그 중 특히 ‘Today’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 당시 그룹 멤버 중에는 재능이 있는 아티스트가 많았다. 후에 팀을 탈퇴하여 솔로 가수가 되어 ‘Bette Davis Eyes’를 불러 그해 최고의 히트 송을 기록한 ‘Kim Carnes’ 그리고 ‘Eve Of Destruction’ 을 부른 ‘Barry McGuire’ 등이 그들이다. 1년간 이 그룹에서 활동하던 ‘Rogers’는 포크 송에 만족하지 않고 팀을 떠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본인이 직접 팀을 조직하여 이름을 ‘The First Edition’로 정하고 팝 칸츄리 음악을 시도했다. 첫 데뷔 곡인 ‘Just Deopped In’ 이 빌보드 차트에서 5위로 기록하여 첫 걸음 부터 좋은 결과를 얻었고 이어서 취입한 ‘Ruby Don’t Take Your Love To Town’ 과 ‘Something’s Burning’이 빌보드차트에서 6위와 11위에 각각 올라 정상의 길에 들어섰다.


10년간 그룹 활동을 하다가 드디어 1977년 솔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레코드딩 한 곡 ‘Lucille’가 빌보드 차트에서 탑5에 오르며 생애 처음으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그런 후 ‘She Believes In Me’, ‘Coward Of The Country’, ‘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 ,’The Gambler’ 등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The Gambler’의 힛트는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 곡은 ‘Don Schlitz ‘가 1976년 작곡한 노래이며 이 노래를 만든 후 취입할 가수를 물색했으나 2년동안 구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칸츄리 가수인 ‘Bobby Bare’ 가 수락하여 LP레코드에 수록했으나 반응은 없었다. 그러자 본인 스스로가 싱글로 발매했지만 역시 판매 부진으로 끝났다. 이후에도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모두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Rogers’가 싱글 레코드로 판매하자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곡의 영향으로 그는 1980년 Grammy Award 분야에서 최우수 칸츄리 가수로 선정되었다.

그의 성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Endless Love’, ‘Hello’,‘ Knock Three Times’ 등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가진 ‘Lionel Richie’ 가 노래를 만들어 ‘Rogers’ 에게 선물한 곡 ‘The Lady’ 가 빌보드 차트에서 6주간 정상에 올라 기염을 토했다. 이후 ‘We've Got Tonight’ ,’Islands In The Stream’ 등을 계속 발표, 2018년 미 연방하원은 그의 레코드를 하원 도서관에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도 We Are The World For Africa’ 자선 콘서트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콘서트 관련하여 ‘Michael Jackson' 이나 ‘Lionel Richie' 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Rogers’가 이 자선 콘서트를 기획하고 그의 스튜디오를 녹음하기 위해 장소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우리는 자선 콘서트의 산파 역할을 하며 6천3백만불을 모금한 그의 위대한 공적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거침없이 뿜어대는 자연미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자신있게 발산하는 그의 에너지. 우린 그를 기억한다. 어쩌면 영원히.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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