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하루 최대 2~3,000번 얼굴을 만져요. 깨어있는 동안 일분에 3~5회죠. 그 사이에 문손잡이, 식수대, 엘리베이터 버튼을 만지고 서로 터치하면서 병균을 옮깁니다.”
영화 ‘컨테이전’(Contagion)에서 전염병 전문가 닥터 미어스(케이트 윈슬렛 분)가 하는 말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2011년 만든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그대로 예견한 듯한 내용이 화제가 되면서 지금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온라인 스트리밍하는 영화로 올라있다. 바이러스 전염병을 다룬 재난영화로는 ‘아웃브레이크’(1995)와 한국영화 ‘감기’(2013)도 있는데, 이 영화들은 시작은 그럴싸한데 뒤로 가면서 너무 드라마틱하려고 억지를 쓰는 바람에 사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영화 ‘컨테이전’은 단 한 번의 악수로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경로를 스피디하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베스(기네스 팰트로 분)라는 여성이 홍콩 출장길에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기고 칵테일을 마시며 옆 사람과 접촉한 다음, 중간 기착지 시카고 공항에서 음료를 마신 후 신용카드로 계산한다. 그녀는 미니애폴리스의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하는데 그녀와 포옹했던 어린 아들도 죽는다. 카지노에서 그녀가 만졌던 칩, 칵테일 잔, 전화를 건네준 옆 사람, 크레딧 카드를 받은 사람들도 차례로 쓰러지고 거기서부터 퍼진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된다. 한명에서 10억명이 전염되는 데는 30번에 거쳐 120일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영화 속 바이러스 MEV-1는 코로나19와 굉장히 비슷하다. 기침 등 비말과 오염된 표면을 통해 전파되고 증상은 마른기침, 고열, 발작 등이다. 다만 치사율(25%)이 훨씬 높아서 한달 동안 2,600만명이 사망하는데 그 사이에 공포에 싸인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고 약탈과 강도가 벌어지고 급기야 폭동이 일어나면서 많은 도시가 무법천지가 된다. 다행히 나중에 백신이 개발되지만 그때부터는 누가 먼저 백신을 맞느냐를 놓고 또 다시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MEV-1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을까? 영화 끝부분에서 밝혀지는 감염경로는 박쥐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새끼돼지를 홍콩의 요리사가 요리하다가 손을 씻지 않은 채로 최초감염자 베스와 악수하면서 전파가 시작된다.
현재의 코로나19 역시 박쥐에서 다른 생물을 거쳐 인간에게 전염됐을 것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추정하고 있다. 그것은 사스나 메르스도 마찬가지였다. 사스는 박쥐에서 사향고향이로, 메르스는 박쥐에서 낙타로 전파된 바이러스다. 코로나19의 매개동물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WHO는 중국 우한의 야생동물시장에서 판매되는 천산갑(pangolin)을 유력한 중간숙주로 보고 있다. 천산갑은 중국인들에게 보양식으로 알려져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은 박쥐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히려 박쥐는 지금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바이러스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야행성동물 박쥐는 자연계에서 해충을 없애주는 유익한 동물로 이들이 사라지면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학자들은 강조한다. 박쥐는 동굴, 삼림, 나무구멍에서 수백만마리가 붙어살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바이러스가 마리 당 130여종이나 된다. 따라서 이들의 면역계는 각종 바이러스로 인한 항염작용을 잘 견디게끔 진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박쥐의 몸은 바이러스 창고가 되었다.
그 바이러스들이 인간에게 온 것은 중국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숲을 밀어버리고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인간과 박쥐의 생활영역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박쥐 바이러스의 전파가 인간의 산림파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영화 ‘컨테이전’에서도 바이러스의 첫 전파경로를 보여줄 때 트랙터가 숲을 밀어버리자 박쥐들이 튀어 날아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과학적 신뢰도를 위해 CDC와 WHO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는데 그때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냐고 묻자 모두들 “전염병은 발발할지 안 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쥐를 비롯한 야생동물은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다. 오로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참사일 뿐이다. 박쥐가 서식하는 숲을 밀어버리고, 미식이나 보양을 위해 갖가지 야생동물들을 밀렵하여 멸종위기로 몰아가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 또 다른 팬데믹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박쥐는 인간에게 전염가능한 인수공통 바이러스를 61종이나 더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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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