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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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에게 걸렸던 추억 속 이야기

2020-04-05 (일) 이혜란 / 미주 펜문학 워싱턴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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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코로나19로 집에서 꼼짝 못하고 지내는 날들이 많지만 봄 냄새가 코끝에 와 닿고 고르지 않은 날씨에 눈은 며칠씩 내리던 오래 전 이야기이다. 그날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급히 외출을 하게 되었다. 목적지에 가는데 15분 또 돌아오는데 15분 그곳에서 2분, 그러니 30분 조금 지나면 돌아오겠노라고 남편에게 얘기한 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급히 약국을 떠났다. 아무리 급해도 세상일이란 그렇게 마음 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깜박 잊고 있었나보다. 마음이 급한 탓인가 자동차 핸들은 왜 그리 꽉 잡고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차는 정말 내 마음 보다 더 급히 앞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경찰차 하나가 불빛을 번쩍이며 다가와 시야를 가린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아차, 내가 무슨 짓을 잘못한 걸까’ 겁부터 났다. 길가 쪽에 차를 세우라는 백인 경찰의 손짓을 보며 몸은 벌써 반쯤 얼어 있었다.

“왜 그렇게, 빨리 달려가는지요? 알다시피 여기는 하이웨이도 아니고 그냥 차가 조금 많이 다니는 주택가(residential area)인데요."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눈이 많이 녹아 질퍽한 이곳에서 내가 뭘 빨리 달릴 수 있었겠어요?"라고 풀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속도를 재는 스피딩건을 번쩍 들어 보이며 “이것으로 내가 잰 기록이 있습니다" 라는 말에 내 목소리는 이미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갑자기 백기를 든 나 자신이 측은해 갑자가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 있을 두 아이 생각이 났다. 나는 얼떨결에 생전 처음 보는 이 경찰관에게 하소연을 시작 했다.

“저기요, 경찰관님( Mr. Policeman), 당신이 만약 오늘 나에게 티켓을 주면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몰라요. 우리 집에는 대학교에서 돌아온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애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번갈아 가며 스피딩 티켓 아니면 파킹 티켓을 들고 와서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그리고 등록금도 비싼데 그 돈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몇 번 야단을 치다 지쳤는데, 그 애들의 대답은 항상 똑같이 학교 시간이 늦어서이거나 파킹할 곳이 없어서 라며 꼭 이유를 대지요. 물론 저는 일찍 일찍 시작하라 얘기하지만 아이들이 얘기를 듣나요?
그래서 요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노래를 하지요. 노 티켓, 노 스피딩 티켓, 노 파킹 티켓( No-Ticket/ No- Speeding Ticket / No-Parking ticket )이라고요. 그런데 오늘 만일 당신이 나에게 스피딩 티켓을 준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며 또 내가 무슨 얼굴로 집에 가서 그 아이들을 볼수 있겠어요? 그러니 나 오늘 티켓 받으면 정말 집에 못갈지도 몰라요. 정말 못 갑니다.”


그 경찰관도 아마 티켓을 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서 다른 이유들을 들어왔을터인데 오늘은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이럴 때 사정을 봐 주어야하나 어쩌나 하고 망설이는 표정이다. 이건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유라는 표정으로 기가막힌 듯 잠시 웃더니 50대 정도로 보이는 이 백인 경찰관은 생각을 바꾸었는지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나도 대학생 아들이 하나 있어서 이해합니다. 이번만 봐 드리지요. 다음부터 정말 조심할 것 약속해요. 가만있자 내 카메라에 당신의 번호판과 스피드가 이미 찍혀 있으니 이걸 아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방법이 있어요.

우선 내가 당신한테 오늘 티켓은 주지만 벌금을 내지 말고 그냥 기다리면 법원에서 재판에 나오라고 연락이 올 겁니다. 꼭 재판소에 늦지 않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당신의 잘못을 설명할 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대부분 간단한 교통위반은 거기서 끝나고 무효가 되거든요. 나는 그날 그곳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나는 너무 고마워 “땡큐, 땡큐"를 연발하며 그저 고개만 90도로 연신 숙이고 있었다. 그 경찰관의 배려를 보며 우리가 어디에 살던 인종이 서로 다르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연다면 어려운 일이라도 마음의 다리를 건너 서로의 아픔도 이해해 줄수록 있을 것 같다. 따뜻한 4월의 이 봄에 그 옛날 추억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이혜란 / 미주 펜문학 워싱턴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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