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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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할 수 있는 일

2020-04-01 (수) 전윤재(오클랜드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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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다 바깥 공기를 쐬러 집 밖으로 나갔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이웃이 내게 말을 건낸다. “가족, 친구, 이웃들과 살을 부비며 힘든 시간을 사람과 함께 겪어내던 전쟁의 시대와 이웃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떨어져 홀로 시간을 겪어내야 하는 지금의 시간 중 어떤 시간이 더 견디기 힘든 시간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강아지와 함께 길 반대편에 서서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소리를 높여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런 대화 방식이 낯설고 이런 상황이 못마땅하다. 나도 모르겠다. 어떤 쪽이 더 힘든 건지.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한 비극과 참혹함은 내 상상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전해져 오는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경쾌한 태도가 내가 늘 알고 지내던 그녀의 모습이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평소와 꼭 같은 환한 웃음과 태도로 나를 대해주는 이웃의 모습을 보니 마음에 잔잔한 일렁임이 일었다는 것이다.

이 시간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펼쳐질른지 나는 알 수 없다.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 상황에 맞춰 계획을 짜고 대비를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상황 속에서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지고 무거워진다. 갖가지 시도와 노력에도 상황이 쉬이 변할 것 같지 않아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이 이렇게 방향을 잃게 두는 것 역시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세상에서부터 나에게로 돌려 나 스스로에게 숨을 고를 틈을 주는 것이 먼저다. 그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세밀하게 일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언제든 내가 선 자리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 어려운 시간을 그 어떤 다른 존재가 아닌 사람으로 견디어 나갈 수 있게 해주리라 믿음이 내게는 있다.

이 시간이 다 지나가고 지금을 돌아볼 때 온전히 사람으로 이 시간을 살아낸 나를 웃으며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금을 떠올릴 때 따뜻한 미소와 경쾌한 태도를 가진 이웃의 옆에서 그녀와 함께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으면 좋겠다.

<전윤재(오클랜드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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