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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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2020-03-30 (월)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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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변이를 일으킨 독감 바이러스가 하루가 다르게 번져 나가는 현장을 TV로 지켜보면서 공포로 얼어붙은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보다 춥고 어둡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아랑곳없이 언 땅이 풀리며 키 작은 수선화가 수줍은 새색시마냥 노란 자태로 눈길을 끈다. 봄을 맞아 갖가지 식물들은 겨우내 자생력을 키워 땅 위로 솟구쳐 오르는데 너나없이 전염병에 발목을 잡혀 실내에서 이리저리 팔 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끝내는 봄바람의 유혹에 이끌려 집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한국과는 달리 마스크를 쓰고 외출할 분위기가 아직은 아니다. 작은 기침 한 번이라도 동양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 동포끼리가 아닌 타향의 설움에 이 난리를 겪으며 더욱 마음이 무겁다.
지난번 한국에 있는 큰 아들로부터 SOS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미국은 괜찮았다. “엄마, 이곳에는 마스크가 동이 나서 살 수가 없으니 속히 마스크를 구해 부쳐주시면 좋겠어요.”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맞아,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지’라면서 급히 동네 마켓을 쥐 잡듯이 둘러보아도 찾기가 힘들었다. 이미 중국사람들이 싹쓸이한 뒤였다. 겨우 동네의 후미진 마켓에서 달랑 남은 6통을 들고 나와 우체국 직원의 늦어도 일주일 후면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야 안심하고 소포를 부쳤다.

그런 뒤 일 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록 받았다는 연락이 없어 분실되었나 보다고, 또 택배 일이 밀려서 그러나 보다고 짐작은 하면서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연일 한국 뉴스에서는 마스크 대란으로 겹겹이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고 조급한 마음에 더 이상 앉아 기다릴 수 없었다. 다시금 몇 번의 헛걸음 끝에 한 마트에서 운 좋게 마스크 4통을 발견하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DHL로 운송비용을 지불하고 특별배송을 하였다. 부친 물건이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아들 집까지 배달되는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지켜보며 그 동안 몰랐던 운송수단이 빠른 세월 따라 발 빠르게 발달하고 있음이 놀라웠다. 다행히 처음 부친 소포가 18일이 지난 뒤 도착하고, 연이어 6일만에 특송으로 부친 마스크까지 아들 손에 들어 간 것을 알고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서 번진 공포의 전염병 바이러스가 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마스크 대란은 물론 지구촌의 얼굴을 뒤죽박죽 뒤흔들어 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 앞에 우방이나 혈맹이란 구호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시사해준다. 유래가 없는 지금의 상황은 이곳 역시도 좀 늦게 터졌다는 것일 뿐 길거리에서 조차 사람을 서로 피해 다녀야 하는 살얼음 판을 걷기는 마찬가지 양상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맞물려 언젠가 한국에서 TV로 시청한 허준의 극적인 드라마가 새삼 떠오른다. 세계 각국의 의료계 종사자들이 일선에 투입되어 연일 고군분투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사와 간호사들의 사명감 앞에는 마음이 숙연해 진다.

이제는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인류 역사상 바이러스는 잊을만하면 또 다른 형태로 변이를 거듭해 왔듯이 앞으로도 이 보이지 않는 미물과의 싸움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두뇌 앞에는 시간문제일 뿐, 발 빠른 백신 개발과 안전수칙을 지키는 개개인의 의지 앞에 바이러스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막막하고 조급한 마음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이 시기를 잘 극복해 나간다면 어느 순간 달갑지 않은 이 불청객도 지구촌에서 사라지고 다시금 우리에게는 커피잔을 앞에 놓고 정답게 담소하는 일상의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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