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통해서 학교가 좋아졌어요”

2020-03-30 (월)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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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오늘 2시 이후로는 학교의 모든 문을 잠거. 그러니까 지금 나가지 않으면 경찰이 와서 쫓아낼꺼야.” 학교 교직원이 구석진 내 아지트 공간에 와서 당장 나가라고 전했다. 오늘 부로 학교는 문을 닫았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이 사라졌다. 학교는 문을 닫고, 도서관, 카페도 문을 닫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이 학교는 텅 비었다.

닫힌 문 사이로 새로운 일상은 종일 내 방에서만 이루어졌다.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는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보여줬다.


매일 진행하던 수업도 부랴부랴 온라인으로 바꾸었다. Zoom으로 16명의 학생들과 실시간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나도 학생들도 기술적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얼굴을 마주 대하던 학생들을 스크린을 통해 보니 반응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누가 집중하나, 이해를 못했나, 딴 짓을 하나, 학생들의 반응에 맞게 수업 속도를 조절할 수 없었다.

학생들도 바뀐 일상을 글쓰기에 종종 반영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통해서”는 학생들의 어려움과 불편을 표현하는데 종종 사용되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한국어를 배워요.” “인터넷을 통해 수업하니 어려워요.” “답답해요”라는 표현을 보았다.

많은 글 가운데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 통해서 학교가 좋아졌어요.”

잠시 멈추어 씨익 웃고 학생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

“이제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하니까 일상이 그리워요. 학교가 좋아졌어요.”

그래요? 그러면 우리 “코로나 덕분에 학교가 좋아졌어요.”로 고칠까요? 학생의 한국어 표현은 바이러스 사태로 잃은 평범한 일상을 향한 향수였다.


바이러스는 일상의 풍경을 바꾸었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이제는 얼굴을 마주하고 수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바이러스의 발병은 평범하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마땅히 감사해야할 일상을, 사소한 일상의 가벼움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생각 없는 만남과 악수, 얼굴과 눈을 마주한 대화, 사람의 온기. 바뀐 일상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평온한 일상”이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것과 그 소중함을 되찾기 위한 대가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그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삶이 영화에 들어온 기시감을 느낄 즈음 룸메이트와 아파트를 한바퀴 돌며 이야기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삶을 살았어...”

”625때도 사람들은 먹고, 삶을 살았겠지? 그리고 지금은 낯선 일상이 매일이 되면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지금 경험하는 이 낯선 일상은, 역사 속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평생이었겠다. 역사 안의 팬더믹은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이 또한 일상이기에 도리어 담담해졌다. 그리고 새로 맞이해야하는 일상을 소중하게 보내야, 다시 찾아올 일상이 더 반가울 것 같았다.

일상의 값이 참 비싸다. 일상의 값을 치르고 그 소중함을 알았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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