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나가는 24Hour Fitness Gym 에서 만난 미국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목례만 하고 지나가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생각하면 자신이 무척 심란해 지신다고 말을 거신 것 같다. 나는 던지듯 대답을 했다. 그 세상을 다 머리에 이지 말고 그냥 거꾸로 그 위에 앉아버리면 안될까요? 아마 뭉퉁거려 하나인 세상을 크게 보라고 한 말인듯 싶다. 그게 그렇게 쉽겠는가?
목사님은 말을 계속 하신다. 이전 주에만 세분의 신도가 돌아 가셨다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무도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고.
이 말씀이 묘자리 준비 얘기가 아닌 것은 나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나 갑자기 닥칠 죽음을 위해 평상시 준비를 잘해 놓았다고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영적으로 말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두가지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하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을 계발하여 마음껏 쓰고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영의 길을 닦아서 다음 생으로의 연결을 시켜 놓는 작업이다.
이 두가지 다 인생 처음부터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고, 살면서 갈고 닦는 과정에서 발견하고, 소명의식과 보람을 보태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이에 옆에서 지켜본 한 분의 모습을 이 자리에 소개해 본다.
나이가 들면 당당해 진다. 예의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서일까? 하고싶은 말을 당당하게 하게 된다. 마라톤의 마지막 테이프는 승자의 것이겠지. 죽음앞에 선 승자. 죽음 앞에서 당당했던 여인. 무척 평범하고 예의바른 어른이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객관성을 잃지 않으셨다. 며느리와 사이가 참 좋으셨다. 아니, 며느리가 진정 친어머니처럼 모시는 것처럼 보였고, 또 딸처럼 대하셨다. 아들의 흉도 며느리와 같이 보곤 하셨다. 그런데, 진정 그렇게 하셨다. 그 객관성이 보기 좋았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여년. 처음엔 남편과 온 가족이 함께, 그리고 남편이 가신 후 때로는 아들과 함께, 때로는 며느리와 함께 그리고 손녀딸들과 함께 오셨었다. 남편 돌아가시고도, 정기검진을 거르지 않고 오셨다. 참, 죽음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다니, 당신의 남편의 죽음은 컸을텐데... 말씀은 짧고 담대했다. "첫 병에 갔어요, 글쎄~. 평생 감기 한번 안 앓더니..."
어느 한 날, 오셨을 때에 "한국 다녀오셨다구요?" "어떠셨어요?" "가서도 교회는 나가셨나요?"
"집에서 기도하구, 사촌동생 집에 있었는데, 그 근처 교회 가기도 하구..." "아, 글쎄~ 집에서 내가 기도하는데, 내 동생이 옆에 있다가 울더라구요." "그애는 교회도 안 나가는 앤데..."
"왜 우셨대요?" "그래 내가 물어 봤지요. 너, 왜 우니~? “그랬더니, 얘가 그러잖아요. 언니, 괜히 눈물이 막 나와. 이상하게...” "그래 제가 그랬지요. ‘니가 왜 우니?남 기도하는데, 교회도 안 나가는 애가...’ " "몰라, 언니~ 그냥 눈물이 나." "너, 니가 왜 우는지 아니?" 이 당돌한 질문에, 멍하니 그분을 쳐다 봤을 동생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그 분 대답이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명언이 되었다. 나도 믿음에 대한 질문이 끊임이 없었을 때인데, 그후론 그분의 말씀은 나의 가슴에 깊게 남은 말이 되었다.
"그건 니가 우는게 아니라, 니 영혼이 우는거야." "니 안에 있는 네 영혼이 우는거야." 이 대목에서 나는 빙글거리던 질문을 멈췄다.
저 내공어린 발언, 저 간단명료한 직접 화법, 흔들림 없는 전달에 나는 순간적으로 멍 했었다. 그럼 혹시 내 영혼도? 내 영혼도 혹시 울고 있지는 않나? 아! 내가 왜 여태까지 내 안의 영혼과 대화를 하지 않았지?
숨이 약간 가빠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은 뒤로... 진료를 진행했다.
그 후로 외적인 나만을 생각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가끔은 내 안의 내 영혼의 숨을 들여다 보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내 영혼! 내 안에 있는 존재자! '나' 라는 집에 살고 있는 나 아닌 어떤 나같은 '그' 내가 보살피지 않으면 안될 또다른 나. 그가 숨어서 울고 있을지 모른다니... 왜? 그는 누구야? 왜 나는 그가 남같지 않은거야?
혹시라도 떨고 있을지, 혹시 정말 울고 있을지, 혹시 나 때문에 지금 흐느끼고 있을지 몰라서 가끔 침을 꿀꺽 삼키곤 한다. 참 곱게 가셨다 한다. 본인 말씀처럼 안 일어나면 그냥 놔두라고, 굳이 살리지 말라고... 아마 천국의 꿈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꾸신 것 같다.
나의 집에는 그 분이 가시기 전에 선물하신 꽃부케가 있다. 참 아름답고, 풍성한 영원한 꽃이다. 저 꽃을 나는 언제까지 볼 수 있을런지... 내 영혼이 대답하는 것 같다. "당신이 왜 우는지 당신이 알 때까지..."
이렇게 나는 내 영혼의 길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궁금했었는데 바로 옆에 있었다.
그 길은 나만이 알고 나만이 느끼는 내가 만드는 길이었다. 때로는 눈앞에 꽃밭이 펼쳐지고 구름이 쏟아지며 지나가기도 했다. 하얀 빛이 이마를 두드리는 꿈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나는 안다. 아직 하늘나라까지 가는 길은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그래서 아직 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위의 분처럼 담담하고 당당하게 그 때를 기다릴 수 있으려면 무척 바삐 작업해야 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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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무 (치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