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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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쌍꺼풀 전감정씨

2020-03-25 (수) 전윤재(오클랜드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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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나름 이성적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얼마전에야 내가 감정적인 그것도 굉장히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가슴팍에 붙여 두었던 이름표를 떼어 내고 새로운 이름표를 붙이는 경험도 놀라웠지만, 나를 진짜 놀라게 했던 것은 나의 이런 자각을 대하는 주변의 반응이었다. ‘제가 참 감정적인 사람이더라구요’ 하는 고백에 열이면 열 ‘아니,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이야!’ 하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쌍꺼풀이 없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가 그런다. “너 쌍꺼풀 있어. 그것도 되게 큰 거.” 나이가 들어서 주름이 참 깊게 진다 생각하고 있었던 눈 위의 주름이 다른 이들에겐 굉장히 두껍고 큰 쌍꺼풀로 보인 것이다. 나한테 쌍꺼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사람은 매일 내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본 나뿐이였다.

내 안에 자리잡은 셀프 이미지는 어지간해서는 그것이 왜곡되었다 해도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첫째는 이미지의 왜곡을 볼 수 있는 능력 혹은 도구가 나한테 없어서고, 둘째는 설혹 셀프 이미지가 왜곡된 것을 봤다고 해도 마음에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이미지로 예전 이미지를 대체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실제의 나는 쌍커풀있는 전감정씨지만, 내 인식 속의 나는 무쌍의 전이성씨다. 무쌍 전이성씨는 쌍꺼풀 전감정씨에 의해 대체되길 원하지 않는다. 써놓고 보니 생각할 때보다 더 기이해 보이지만 그렇다는 거다.


그래도 나를 바르게 보려는 노력은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를 가리고 있는 가면을 벗어야지 그 벗겨낸 가면의 무게만큼 내 삶을 누르고 있던 무게를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면을 벗을 때 비로소 그 가면에 맞춰하던 연기를 멈출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가면을 벗으면 그제서야 내 얼굴에 맞는 자연스러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쌍꺼풀 전감정씨는 혼란스럽다. 어쩌면 무쌍 전이성씨가 혼란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누가 되든 지금 바람은 그렇다. 이 둘이 전윤재 안에서 바르게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실체가 없는 막연한 바람같은 건데, 어쩐지 쌍꺼풀 전감정씨가 잘 해낼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은 든다. 한쪽에서 무쌍 전이성씨가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다.

<전윤재(오클랜드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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