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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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색계란

2020-03-23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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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활절 풍습에 계란에 예쁜 색깔이나 무늬를 그려 선물하는 일이 있다. 계란을 생명 탄생의 출발점으로 보고 새로운 행복을 향한 격려의 뜻을 담은 풍습이다. 부활절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이며 예수의 부활이 새벽에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흔히 새벽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 신앙인 영생 천국 구원 등이 모두 부활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어 ‘부활’은 기독교의 근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활 곧 다시 살아난다,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새출발 한다는 사상은 거듭남 곧 새로운 생명이 된다는 중생(重生)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대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귀중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그대의 생명은 고귀한 의무이다. 참고 그 짐을 져야 한다. 그대의 생명은 아름답다. 마음껏 즐기고 찬양하라. 그대의 생명은 싸움이다. 후퇴하지 말고 대결하라. 생명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좋으나 싫으나 그대는 그것을 받아야 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생명을 귀중하게 가꾸는 것이다. 인간의 목적지는 무덤이 아니다. 생명은 정직하며 그 생명을 빛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올바른 삶의 자세이다. 그러기에 얼마나 사느냐 하는 것보다 하루를 살아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다. 이 가정에 아이들 넷이 있는데 한 아이는 며칠 전에 병을 앓다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생명이 위함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부인이 또 다시 임신하였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화난 어조로 “당장 낙태 수술을 시켜야 합니다.”하고 소리질렀다. 교수는 조용히 말하였다. “자네는 지금 막 베토벤을 죽였네.”이 불행한 환경에서 다섯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악성이라 불린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이렇다 할 육신적인 성취를 보여주지 않았다. 역사에 남을만한 저서도 활동도 없다. 그러나 그는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남겼다. 십자가는 바로 생명 사랑에 대한 예수의 흔적이었다. 시간의 연장이 생명이라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시간과도 바꿀 수 없다. 우리들이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것이 편한 삶을 위한 투자라고 하지만 생명은 안락과도 바꿀 수 없다. 성취에 대한 만족이 삶의 보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공도 생명과는 바꿀 수 없다.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지 무엇을 성취하려고 생명이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신의 선물이므로 고맙게 받아 잘 가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바쁘게 달려가던 발걸음을 잠간 멈추고 깊이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이 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에 진정으로 눈물을 흘려 보았는가? 나는 지난 한 해 동안에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여 보았는가? 나는 지난 한 해 동안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일이 있는가? 나의 서재에 써 놓고 가끔 읽어보는 글이 있다. “나를 믿어주는 이들이 있으니 나도 진실하리라/ 나를 걱정해 주는 이들이 있으니 나도 깨끗하리라/ 나에게 언제나 고민해야 할 일이 생기니/ 나도 더 힘차게 살리라/ 언제나 과감하게 치러야 할 일들이 많으니/ 나도 더 용감하리라”

인간은 누구나 불을 나르는 수레이다. 그런데 욕정의 불을 나를 수도 있고 신념의 불을 나를 수도 있다. 미움의 불을 나를 수도 있고 사랑의 불을 나를 수도 있다. 내가 한 번 뿐인 나의 생애를 통하여 어떤 불을 나르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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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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