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 에세이] 경칩에

2025-03-07 (금) 07:46:20 윤관호/국제펜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크게 작게
경칩(驚蟄)은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는 세번째 절기이다. 경칩에는 숨어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뱀, 곤충 등이 봄기운에 잠에서 깨어나 꿈틀대며 밖으로 나온다. 선조들은 새싹이 돋아나는 경칩에 한 해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흙일을 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경칩 이후 갓 깨어난 곤충들과 새싹이 죽지 않도록 들판에 불을 놓지 말라는 공고를 냈다. 보리싹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잘 자라고 있으면 그 해는 풍년, 잘 자라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점치기도 했다.

경칩 무렵에는 위장병이나, 피부병,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 있다고 고로쇠나무를 베어 그 수액을 마셨다. 요통에 효험이 있다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낳은 알이나 도룡뇽 알을 먹었다. 경칩 날에 흙을 만지면 탈이 없다고 믿고 흙벽 바르기도 했다.


조선 세조 때 지은 “사시찬요”에 따르면 사람들이 경칩 날에 남편과 아내가 각각 은행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을 확인했다고 한다. 처녀, 총각이 경칩 날 밤에 좋아하는 상대와 은행을 나누어 먹으면서 암^수 은행나무를 돌면 사랑이 결실을 이룬다고 했다.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추웠다. 입춘이 지나고 대동강의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에도 내가 산책하는 바닷가에는 두터운 얼음이 풀리지 않았다. 우수가 며칠 지나서야 녹았다. 경칩을 보내며 아침에 산책을 하던 중 수선화 새싹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수선화 새싹들을 스마트 폰으로 사진 몇 장 찍었다. 연약해 보이는 새싹들이 단단한 흙을 뚫고 나오다니 생명의 힘이 놀랍다. 다음 날 다시 영하의 날씨가 되었다. 세상에 갓 나온 새싹들이 얼어 죽을까 걱정이 앞선다.

찬 바람이 다시 불고 눈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새싹들도 환경에 적응하여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리라고 본다.

요즈음 조국 대한민국이 소란스럽다. 불의와 탈법이 아닌 정의와 준법, 부정과 위선이 아닌 공정과 상식, 위선과 군림이 아닌 양심과 섬김의 리더십이 요망된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집회를 하고 있다. 개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일어난 대다수 국민들의 뜻대로 이루어져 안정되기를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하는 절기인 경칩에 바라 마지 아니한다.

다음은 경칩이라는 제목의 나의 졸시이다.
“경칩인 오늘/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봄을 맞아/역동적으로 일하는 대지의 땀//아지랑이 사이로/언 땅이 녹고/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동면에서 깨어나/기지개 펴는 개구리를 보노라//나무들이/기쁨의 울음과 웃음을 담은/꽃망울을 달고 있다//시샘하는 차가운 바람과/눈이 온다 할지라도/봄은 왔다/청량한 공기가/가슴 깊이 들어온다”

<윤관호/국제펜한국본부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