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물집

2020-03-12 (목) 권귀순 / 워싱턴문인회
크게 작게

▶ 제2회 배정웅 문학상 수상작

누가 한 칸 외딴집을 여기 지어놓았네
물을 떠나 뭍으로 올라온 한 척의 배처럼
덩그러니 입술 위로 솟은 집

너무 멀리 걸어와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고 아픈 발 가만히 들여다보면
발가락에도 집을 지어놓았다
희미하게 고인 물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꽃망울을 닮은 것도 같은데
상처는 가끔 꽃을 피우기도 하지


몸은 물이 사는 집
힘들다, 힘들다 해도 모른 척할 때
몸 밖으로 묵묵히 물을 길어내
물의 집을 짓는다

지나다 문득 만나는 길모퉁이 가건물처럼
지었다가는 허물고 말
물로 지어진 집

작은 우주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그의 언어를 놓치지 말고 잘 해독할 일
-지금은 쉬어갈 때

<권귀순 / 워싱턴문인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