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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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기도

2020-03-12 (목) 이지현 /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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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뽀얀 피부에, 젊은이들은 겉옷인지 속옷인지 통 알 수 없는 옷차림이 요즘 시대에 맞는 멋진 스타일이라고 하고, 아직은 엄마한테 어리광이나 부릴 사춘기가 되었을까 말았을까 하는 청순해 보이는 아이들이 새 색시 못지 않은 환한 화장기 있는 얼굴을 한국 드라마를 통해 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요즘 세상이 많이 변했고 좋아진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왠지 뒤숭숭하고 어지럽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난들,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크고 작은 총기 사고들, 그리고 우리들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인간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고와 패륜아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일들…. 그래서 더러는 걱정과 한숨도 쉬었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하랴. 난데 없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에 온 세계가 움츠러들고 있다.

걱정스럽게도 우리나라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심각하단다, 초 긴장 상태인 것 같다. 정부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각 종교단체들도 특별한 움직임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한국 천주교회 236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중단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를 보는 순간 부모님으로부터 천주교의 교리를 알고 신앙 생활을 해 온 나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혼자 되뇌이며 정신이 멍한 느낌에 그냥 눈을 감고 한참을 있었다. 그러다가 눈감고 있던 그 순간 무엇이 문득 생각났다.


신유박해, 병오년박해, 신해박해 때에 그 참담한 시간 속에서도 신앙 생활을 하셨던 그 분들의 대나무처럼 꼿꼿하고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 없으셨던 굳은 정신, 숨도 크게 못 쉬시고, 목소리도 제대로 못내 의사 표현을 벙어리처럼 손짓발짓으로 하시고, 중죄인이 잘못을 저지르고 밝은 날을 피해 어둠 속만 찾아 다닌 것처럼 캄캄한 밤이나 어두컴컴한 동굴만 찾아 다니시며 그 두려움 속에서도 신앙의 끈을 이어오신 순교하신 우리 선조들이 생각났다.

전염병 때문에 이백 삼십년이나 넘게 이어져 오던 하느님께 드리는 미사를 중단한 사건이 나 하나만의 충격이 아니라 생각한다.
미사란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숭고한 제사라고 한다. 박해 시대에 몸을 움츠리고 숨어서 기도 하던 때와 지금은 예기치 못한 무서운 바이러스 전염병 때문에 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린 이야기이지만 이어서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자비를 베푸사 이 어려운 시간들을 잘 넘기게 해 주시고, 병고에 시달리시는 만은 분들을 어서 말끔히 치유해 주시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소서. 그리고 하루 빨리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 갈수 있게 도와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다함께 모여 힘찬 목소리로 떨리는 가슴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기도, 미사를 바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드려본다.
꼭 들어 주시겠지.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시니까….

<이지현 /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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