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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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라고

2020-03-09 (월) 이경주 / 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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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제 이사할 때가 되었나 보오
나는 지금 당신의 식어가는 손에
내 볼을 비비고 있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일뿐이오

3월
만물이 소생하는 들엔
노란, 보랏빛 각색 수선화 곱게 피었소
목련도 촛불 켜고 봄을 맞소
사순절이 지나면
부활절 축제가 열리는데

담벼락에 그려진 마지막 잎새는
아직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소


60여 년
미운 정 고운 정 다져오다가
2020년 3월 6일 오후 2시 50분
날 받아 혼자
그렇게 이사를 가면 난 어쩌란 말이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했는데
그곳이 그리 좋으면 함께 가야죠

이별은 봄에 오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내 가슴이 동토가 되어
칠흑에 빨려가고 있어요
이별은 아픈 것이지만
더 기다리란 말 못하겠소
개골산 같이 야윈 당신 모습에

이제 놔 드릴게요
잘 가세요
편안히
편안히
당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그곳
엄마 아빠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구요
그곳에 가 좋은 터에
내 자리도 마련하시고
빨리 불러주어요
당신을 만나는 길이라면
한걸음에 달려가리다

사랑한단 말 노자삼아
정말 편안히 잘 가세요.

<이경주 / 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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