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토비를 떠나보내며

2020-03-08 (일) 박찬효 / 약물학 박사, MD
크게 작게

▶ 살며 생각하며

토비는 우리집에서 기르던 애완견이다. 아주 똑똑하고 눈치 빠르며 사랑스러웠던 토비를 이미 2013년 초반에 한국일보에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애완견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기사를 워싱턴 포스트지의 1면에서 읽었다고 언급했는데, 토비도 그만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큰 아들이 어린 강아지때부터 기르다가 첫 아이를 낳고는 우리집으로 입양시켜 우리는 그를 “박토비”로 부르며 약 5년을 길렀다. 그 후 약 2년반 전에 근처에 사는 후배 C네로 입양되어 갔는데 지난주에 안타깝게도 그 수명을 다 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본인이 2017년초에 은퇴한 후 부터는 장기 출타가 많아졌고, 그때마다 토비를 돌보아 줄 사람을 구하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 애태울때, 우리의 사정을 알고 감사하게도 애완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던 후배가 기꺼이 토비를 입양해 주었다. 서로 가까이 살아 가끔 찾아가서 토비를 만날수도 있고, 또한 후배가 출타할때면 우리가 두 녀석을 돌보아 주며 예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니 토비는 아주 이상적인 입양케이스였다.
토비는 정말로 복이 많았던 놈이다. 후배 부부는 진정으로 애완견을 사랑하여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최고 품질의 먹이에다 때 맞추어 목욕, 이발, 예방접종, 치아 관리 등 호강을 누리며 살았는데, 명이 짧았는지 지난주에 세상을 떠났다.
토비에게는 아주 고질적인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기회만 되면 용케도 목줄에서 벗어나 도망치는 버릇이다. 지난 수요일에도 결국 그 버릇 때문에 늘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컴컴한 늦은 저녁에 산보하러 밖으로 나온 그 녀석은 용케도 목줄에서 벗어나 도망 치다가 마침 지나가던 자동차에 부딪쳐 엄청 심한 부상을 입었고 응급실로 급히 호송되었다 한다. 응급처치로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오른쪽 눈, 대퇴부 골절 등 많은 부상으로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어도 앞으로 삶의 질은 의사도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치료비가 수만불이 든다고 하니 그것 또한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토비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만 이틀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여러번 상의를 했고, 결국은 심히 힘들고 가슴 저리는 결정으로 토비를 잠 재웠고, 토비를 눈물과 함께 땅 속에 고이 묻어 주었다. 토비야, 잘 가라…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번 사건으로 한 가지 생각나는 슬픈 일이 있다. 나의 조카 한 명은 심한 당뇨병으로 고생하다가 젊은 나이에 신장이 많이 나빠졌고, 신장 투석을 받으며 버티다가 결국 악화된 증세로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상태가 여러 날 계속되고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가족들은 이제 그만 그를 떠나 보내야 하는지 심한 고민에 빠졌고, 결국 하루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는데 그 날 밤에 조카는 세상을 떠나서 가족이 인위적으로 그를 떠나 보내야 하는 뼈아픈 고통을 면하게 해주었다.

놀라운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우리들은 소위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한 우리들이 아마도 자식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생시에 문서로 유언을 작성하여, 혼수상태가 계속되며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을 지속할지의 여부를 확실히 해 놓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면 자손들은 임의로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이미 작성해 놓은 유언장에 이 점을 확실히 해 놓았다.

<박찬효 / 약물학 박사,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