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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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기도

2020-03-03 (화)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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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느 지인으로부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동영상 하나를 받았다. 사진 속에는 조촐한 구역예배 모임에서인지 수더분한 가수의 기도 같은 복음성가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에 와 닫는 생각이 떠올라 잠시 초창기 믿음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불혹의 나이로 접어들자 집안 살림하느라 매일의 일상을 종종걸음으로 걷다 보면 때로는 정신적인 쉼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내 스스로 찾아 갔다기보다 언젠가 친한 친구가 쥐어 준 설교집이 생각나 문득 발길이 머문 곳은 압구정동의 한 대형 교회였다.

그날 따라 목사님의 부드러운 설교 말씀에 어찌나 감동을 받았는지. 어쩌면 그때가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를 절실히 잡고 싶은 시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흔히 말하는 주일교인이 되어 구역예배도 참석하고 시간이 흐르니 집사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불리어질 즈음,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참하게 된 병원 봉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병원을 내왕하는 건 건강한 몸으로는 결코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음에도 구역식구의 한 사람과 함께 교회 전도지를 들고 병원문을 드나들게 되었다.

여러 종류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는 순간 내 손에 들린 전도지를 보고 벽을 향해 등을 돌리는 사람, 건성으로 머리맡에 두고 가라는 환자도 있지만, 기다리고 있었던 양 반갑게 책자를 받아 읽는 아주머니 아저씨도 있어 내미는 내 손을 가볍게 하기도 했다. 그중 어느 일인실 문을 들어 갈 때 나를 긴장하게 하는 여자 환자가 있었다. 그 분은 항상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는데, 그 당시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왠지 거절할 수 없었다.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건강을 위해 드리는 나의 어설픈 기도가 진심에서 우러나왔는지 돌아 나오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 모르는데 그분은 그 뒤로 갈 때 마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 분의 딸이 간병차 와 있을 때는 기도하는 그 자리가 더욱 곤혹스럽게 느껴지곤 하였다.


따님의 얘기에 따르면 엄마는 오랜 세월 교회에 다니며 여러모로 봉사해온 믿음이 깊은 권사님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 병실에는 어쩐지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고 생각했는데…. 흔히 기도는 훈련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용기 또한 필요했던 듯, 한 발도 나아짐이 없는 기도였는데도 그 분은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하신 듯 했다. 그 뒤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어 권사님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우연히 그 분의 따님을 길에서 만났다.

어떻게 나를 기억했는지 내 손을 붙잡고 울먹이듯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한다. 얼마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입원해 있을 당시 나의 기도가 어머니에게 많은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고 하며 행여 만나게 되면 감사를 대신 전해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아마도 따님 역시 나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굳이 이 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성경 구절이 있고 보면, 마음속의 절절한 소망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진리가 그 따님을 통해 어머님이 전하고자 했던 진심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아득한 지난날의 이야기 같지만 돌이켜보면 우연한 봉사가 좋은 믿음의 추억이 되어, 오늘따라 이름 모를 가수의 찬양가가 내 마음을 맴돌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번지게 한다.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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