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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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기생충’을 싫어하면 안되는 이유

2020-03-02 (월) 수필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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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나의 살며 생각하며

2019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의 기생충(PARASITE)을 트럼프는 왜 그토록 싫어하는 걸까? 기생충은 숙주에 기대어 숙주의 영양을 빼앗아 먹고 살기 때문에 숙주에게는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실은 기생충이 있어야 숙주의 생존도 지속되는 유익한 기생충도 많이 있다. 이런 점에서 기생충이 숙주에 붙어 먹고사는 건지 기생충이 살기 위해 숙주를 계속해서 생존하게 만드는 건지, 누가 누구를 위한 생존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건 숙주는 기생충이 없으면 살 수 없고 기생충은 숙주가 없으면 살 수 없음을 모든 지구상의 생명체는 알고 있는 듯한데 인간만이 기생과 숙주의 관계가 공생임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기생하거나 공생, 그러므로 인한 상생이 있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고자 했었을까? 봉준호 감독이 어디까지를 설정하고 만들었는지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를 재평가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발언이다.
정당대회 연설에서 이틀 연속으로 오스카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아무 가감 없이 쏟아냈다. 미국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인 한국이 무역협상에서는 양보도 하지 않는데 왜 미국이 오스카상을 4개나 줬으니 알 수 없다고 소리쳤다. 이는 기생충이 싫은 게 아니고 기생충의 내용도 모를뿐더러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없이 그저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오스카상을 빼앗겨서 배가 아픈 심정을 막말로 내뱉은 것이다.

미국이 아닌 한마디로 비영어권의 작은 나라에서 감히 영어권에 도전장을 내밀고 날름 다 먹어버렸으니 분통함을 넘어 그냥 비아냥거리고 싶었나 보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오스카상 하나를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상을 100개 가진 자가 처음으로 상 받는 어린아이에게 신경질 내는 꼴이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도 있다. 오스카상 그것도 4관왕으로 상을 싹쓸이했음을 트럼프 스스로가 전 세계에 광고를 해주었다. 오스카상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한국이 영화를 잘 만드는 나라구나! ‘한국이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한국에서 보면 돈도 안 들였을 뿐만 아니라 손도 안 대고 코 푼 셈이라 앉아서 자동으로 문화적 국격을 높인 일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좋고 나쁨은 동전의 양면이란 말이 있나 보다.


트럼프의 발언으로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그래, 미국이 숙주 즉 호스트(HOST)라면 한국은 기생(PARASITE)이다. 왜냐하면, 일단 미국이 강대국이고 자원도 많고 미국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아직은 한국이 대항할 힘이 없으므로 숙주라 인정한다. 그래서 미국의 헛기침이든 마른기침이든 정말 대단한 기침이든 어떠한 기침에도 우리는 최소한 움찔하며 맞장구쳐줘야 하고 그러므로 얻어지는 이익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은 미국의 기생적인 역할이 맞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미국 같은 강대국은 한국 같은 작은 나라의 피를 빨아먹어야 살 수 있는 또 다른 면에서의 기생이다. 한국이 없으면 아니 아시아가 없으면 미국이 살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싼 노동력으로 인건비의 비용 절감을 어디에서 할 것이며 미국에서 생산하는 많은 IT산업의 대량소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할 것이며 하다못해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블록버스터 대형 영화를 누가 보고 그 비용을 창출할 것인가?
“기생와 공생을 넘어 상생할 수 있을 때 나라 대 나라의 매너가 유지된다”

그러므로 트럼프는 한국이 아무리 작고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한국 같은 작은 나라가 없으면 지금처럼 강대국의 힘을 유지하고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만 미국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도 한국에 기생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생이 아닌 공생으로 보아야 하고 공생을 넘어 상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나라 대 나라의 매너가 유지되지 않을까? 트럼프가 ‘기생충’을 제대로 보았다면 모욕적인 비난에 앞서 상생의 해답을 찾았을텐데… 특히 오스카상을 미국에서 결정한 거지 누가 했단 말인가? 앉아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그래도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한국이 잘남을 시기 받아 생긴 일이라 다행이다. 미국 속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고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여 준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수필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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