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화를 바란다면 깃발을 들자

2020-02-28 (금) 12:00:00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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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중간선거가 끝난 직후 한인사회는 환호했다. 동부에서는 뉴저지의 앤디 김 후보가, 서부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영 김 후보가 연방하원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연방하원에 한인 정치인 두 명이 나란히 입성하는 것은 115년 이민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니 한인사회는 흥분할 만했다.

결과를 보면 앤디 김 후보만 당선되었다. 부재자투표와 우편투표 개표가 며칠씩 계속된 후 영 김 후보는 석패의 고배를 마셨다. 처음부터 진 것보다 더 안타까운 역전패였다. 그가 출마한 지역(연방하원 39지구)에는 한인 유권자들(1만8,000여명)이 꽤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 중 “그날 내가 가서 투표를 하는 건데” “우편투표 용지 다 써놓고 부치는 걸 잊어 버렸어” … 하며 애석해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이 모두 투표했다면 그는 당선되었을까.

“나 하나쯤~”은 상습적으로 투표 안하는 사람들의 단골 변명이다. 연방하원선거를 예로 들면 보통 수만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다. ‘한 표가 무슨 대수겠는가, 나 하나쯤 빠져도 되겠지’ 라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합리화나 무관심, 냉소 혹은 게으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의 당선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에 분노하는 국민들 중 2016년 대선 당시 투표 안한 유권자들(특히 경합주, 그중에서도 플로리다)은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물어물 하는 사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고 설마 하는 사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우리 모두 목도했다.

둘째는 지지하는 후보의 낙선이다.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단 한 표가 당락을 가른 예는 미국 선거 역사상 심심찮게 등장한다.

2002년 워싱턴 주에서는 케빈 엔츠라는 경찰관이 주하원의원직에 도전했다가 공화당 예선에서 패배했다. 전체 투표수 1만1,700여 표 중 승자와 패자를 가른 것은 단 한 표. 허탈해 하는 그에게 동료경관이 몹시도 미안해하며 털어놓았다. “우편투표 용지를 주방 카운터에 놓고는 부치는 걸 깜빡했지 뭔가.” 동료가 투표용지를 우송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는 두고두고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7년 버지니아에서는 주하원의원을 제비뽑기로 정했다. 총 2만3,000여 표 중 공화 민주 후보가 동수득표하면서 후보이름들을 통에 넣고 뽑기를 해서 승자를 가렸다. 그때 공화당 후보가 승리, 버지니아 주하원은 단 한석 차이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동수득표 결과 후보들이 동전던지기를 한 경우(2006년 알래스카)도 있고, 2002년 네바다에서는 카지노의 주답게 카드를 뽑아 카운티 커미셔너를 정하기도 했다.

2000년 조지 부시가 불과 537표 차이로 플로리다(총 투표 수 근 600만)를 차지한 덕분에 알 고어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대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때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 미국은 달라져있을까.

셋째, ‘한 표’는 양극화 심화에 기여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소득격차만도 엄청난데 투표율 격차마저 커져 못 가진 자들은 점점 2등 시민으로 내몰린다.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은 표와 돈이다. 대기업과 부자 등 가진 자들은 후원금을 듬뿍 안겨주고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줄 것을 기대/압박한다. 돈에 휘둘리는 정치인들에게 ‘진짜 주인은 국민’이라고 죽비를 내리치는 것이 선거이다. 정치인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표/민심이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켜 주는 기회이다.


문제는 소득과 인종에 따른 투표율 격차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은 투표에 적극적인 반면 소수계와 빈곤층은 투표율이 낮다.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워 투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선거 기준, 연소득 1만 달러 미만 유권자의 75%는 투표를 하지 않은 반면 15만 달러 이상 소득자의 52%는 투표를 했다. 인종별로 보면 백인 투표율(46%)이 제일 높고 흑인(40%)에 이어 아시안과 히스패닉이 27%로 낮다. 백인 두명 중 한명 투표할 때 한인 등 아시안은 네명 중 한명 투표하는 꼴이다.

부유한 백인들은 열심히 투표하고, 가난한 유색인종들은 투표하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이 누구에게 귀를 기울일지, 미국의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불문가지이다.

한 장 한 장의 투표용지는 민심의 신호이고 깃발이다. 깃발들이 쏠리는 쪽으로 미국은 향하게 되어있다. 그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반대편 깃발을 들고 팽팽히 맞서야 할 것이다. 깃발도 들지 않고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을 불평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투표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일. 3일 수퍼 화요일 - 희망의 깃발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인후보들이 출마한 지역 한인유권자들은 잊지 말자. ‘나 하나쯤’의 결과는 무겁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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