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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생충과 세계 파라사이트(Parasite)

2020-02-27 (목)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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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대한민국 영화 역사 101년 만에 획을 긋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한 ‘기생충’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서 네 개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시상을 할 때마다 ‘기생충’이 영어로 ‘파라사이트(Parasite)라고 계속 반복되어 세계 사람들에게 ‘파라사이트’ 단어가 들려졌다. 아카데미상의 후보로 올라가는 것만도 영광인데 무려 네 개의 상, 그것도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받았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아카데미상 92년의 역사에 외국영화가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리라곤 상상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부터 세계의 영화계를 흔드는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 영화를 보는 사람은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람이 한국 상황 속에서 한국영화를 보는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한국에 대해서 놀라고 있다. 구태여 말하자면 BTS의 열풍이 불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한국적인 노래, 한국적인 춤, 한국적인 멋 때문에 그럴 것이다.
기생충 영화에서 보여 주었듯이 한국은 정말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 정도로 구조자체가 어렵기에 작은 것들로는 그렇게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외의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에 깊은 감동을 받는가? 그것은 바로 한국 이야기를 세계 이야기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생충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신분의 차이, 계급의 차이, 빈부의 차이, 삶의 각박함, 그리고 넘을 수 없는 선의 한계, 그러나 치열하게 그 선과 담을 넘고 오르려고 살아야 하는 경쟁시대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아니 그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이미 세뇌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삶은 세상 누구에게나 다 똑같지만 서로가 느끼는 각도는 서로 다르다. 단지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영화가 세계영화를 만든 것이고, 한국이 세계를 한국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다른 영화들도 추구하는 그런 사회적 비판이나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차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기생충 영화가 그렇게 세계를 흔든 이유는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서 미국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말한 “개인적인 것이 창조적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기생충이 한국적인 영화였기에 세계는 그 기생충을 창조적인 파라사이트의 영화로 본 것이다.

한국의 것, 한국의 문화, 한국의 정서, 한국의 언어, 한국의 표현, 한국의 기술,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결국 자기 것이 아니면 남의 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립보서2:4)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말이 지금도 아직도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가까운 나에서 시작된다. 나를 부끄러워하면 남도 나를 부끄러워 할 것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면 남도 그럴 것이다. 한국의 기생충이 세계의 파라사이트가 된 것처럼 말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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