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 가서 누군가 ‘미국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면 메릴랜드 어디라고 하지 않고 ‘워싱턴D.C'라고 말한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짧게 그런다. 2003년 이민 온 뒤로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9년, PG 카운티에서 6년, 그리고 현재는 엘리콧시티가 있는 하워드 카운티에서 3년째 살고 있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워싱턴 메트로 지역의 한인사회는 미국 내에서 4번째 규모를 자랑할 정도다. 그런데 2008년 이후 한인 이민인구는 더 이상의 유입은 정체되고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세대의 노령화 및 자연감소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워싱턴 메트로 한인 이민역사도 더 늦기 전에 정리해 둘 필요를 개인적으로 느끼지만 개인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만약 ‘어떤 공간’이 주어진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곳 메릴랜드 락빌의 아파트에 이사 와서 직장을 알아보고, 아이들 학교에 등록시키고, 주변을 익히고, 교회를 나가면서 듣고, 보고 느꼈던 한인 상권은 몇 개의 거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버지니아의 경우는 아무래도 이민초기에는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D.C와 인접한 알렉산드리아, 폴스처치 세븐코너에서 애난데일로 상권이 통합되었다가 2000년 이후에 지금의 센터빌로 양분되기 시작하였다.
메릴랜드의 경우는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나뉘어져 나갔다. 메릴랜드 대학 유학생 중심의 실버스프링, NIH(국립의료원) 파견 학자 중심의 베데스다, 락빌 지역, 그리고 볼티모어 외곽의 글렌버니, 타우슨 지역 등에서 엘리콧시티로 재집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금도 로컬 곳곳에는 초기 한인상권의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메릴랜드의 경우 현재는 엘리콧시티로 집중되고 있다.
지금 상당한 기대와 호응 속에서 한창 진행, 추진되고 있는 ‘MD 한인 조형물’ 설치 캠페인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려던 차에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다. 현재 메릴랜드 한인회 회관과 조형물 캠페인을 잘 융합하여 보다 많은 한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새 한인회관’을 구입할 것을 정중하게 제안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도 있고, 절차도 있고, 수많은 방법론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우선 쉬운 일부터 하고나서 다음에 생각하자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경쟁적으로 비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북버지니아와 볼티모어는 지리상 50마일 이상의 거리이다. 이는 서울-천안, 대구-부산, 광주-전주만큼의 거리이다. 때마침 버지니아에 최초로 한인회관 오픈이 임박하는 경사스런 일과 함께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메릴랜드에도 순수 한인들의 노력으로 규모와 실정에 맞게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아는 분이 작고하면서 유언에 따라 풍장(風葬)을 했는데 필자는 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추모할 대상물이 없이 화장해서 바람에 날려버린 뒤의 허탈감과 허무함을 보면서 한참동안 우울했었다. 몇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참으로 현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메릴랜드 한인사회도 금방 그런 미래상황이 닥칠 것은 자명하다. 아시다시피 메트로 한인타운에 변변한 연회식당들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행사를 치를 만한 편한 장소도 별로 없다. 또한 지난해 말에 수십 년 이어오던 ‘볼티모어 한인회’가 간판을 스스로 내렸다. 각 한인회들의 속사정을 잘 모르지만 이런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주목해 봐야 한다.
그동안 이민역사가 발전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던 한인회들을 더 늦기 전에 하나로 통합정리하고, 그동안의 역사를 잘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메릴랜드 한인사회는 1890년 미주한인 최초 대학 졸업생 ‘변수(邊遂) 선생이 유학했던 유구한 이민 역사와, 모두에 언급했듯이 수도 워싱턴과 가장 가까운 메릴랜드 주립대, 세계적인 존스합킨스병원, 피바디 음대, 국립의료원(NIH) 등을 중심으로 성숙한 초기 이민세대들의 노력으로 조용하지만 알찬 협력과 봉사를 자랑해 왔다. 거기에 한국사위가 주지사를 연임하고 있고, 2명의 자랑스러운 한인 2세 주 하원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생각과 지혜를 모으고, 조금씩만 이해관계를 양보하고 배려한다면, 갈수록 줄어드는 이민 1세들이 함께 할 공간과 함께 뒷감당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한인회들을 하나로 묶고, 수고했던 각 한인회의 역사와 자료들을 잘 보존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감히 이런 제안을 드리게 되었다. 수고하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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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클락스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