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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원조와 블록체인

2020-02-27 (목) 송윤정 /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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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페니 골드버그 (Penny Goldberg)가 2월 초 사임했다. 약 일주일 후인 지난 13일 자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녀의 사임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요약하자면, 그녀 부서에서 공동 연구하여 저술한 논문을 발표하려다가 세계은행 내에서 저지당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세계은행을 떠나 다시 예일대학으로 돌아간다는 것.

부하직원인 경제학자 밥 리즈커스 (Bob Rijkers)가 코펜하겐 대학교 경제학자 닐스 요하네센 (Niels Johannesen)과 공동 저술한 것인데, 닐스 요하네센은 2017년에 오일 가격이 오를 때 오일 보유 국가들의 국부가 스위스 등의 금융계좌 비밀유지가 제공되는 곳으로 이전하는 것을 밝힌 논문을 발표해 국부의 부정 유출을 드러내었다. 밥과 닐스는 이를 세계은행이 제공한 개발원조액과 부정부패의 연관성 여부를 밝히고자 세계은행이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2개 국가에 제공한 개발원조액에 적용해 원조액이 지급되면 금융계좌 비밀유지가 제공되는 곳의 금융기관에 예치액이 현저히 늘어나는 것을 밝혔다.

며칠 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는, 발표되지 못한 논문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고 결국 2월19일 세계은행은 일 년 이상 저지해왔던 논문을 공개했다. 이런 논문에서 밝힌 것은 학자들이 이를 연구해 발표하기 전에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증명하기가 어려워 진실은 베일에 가려진 채, 현실은 정권이 바뀌어도 사람만 바뀔 뿐 부정부패의 모습은 변하지 않아 권력과 거리가 먼 일반인들의 삶은 무기력하고 피폐해 왔다.


부정부패 얘기를 하자니 지난해 가을 보았던, 전투용 비행기 구매 관련 국방예산의 막대한 부정 유출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베가본드’가 떠오른다. 최근 발표된 OECD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구매 규모가 OECD 국가 GDP의 12%가 넘고 총금액의 1/4이 부정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남미 콜럼비아의 경우 연간 미화 170억달러, 그 나라 GDP의 5.3%에 달하는 금액이 부정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세계경제포럼과 남미개발은행, 콜럼비아 감사실이 협력하여 블록체인을 도입해 이러한 공적 자금의 부정 유출을 막기 위한 시도를 했다.

닭의 구매가격이 일반 시장 가격의 4배가 넘고 구매한 영수증 상의 물건은 배달된 적이 없는 등등의 비리가 만연한 콜럼비아의 학교 급식 관련 구매에 시도되었다.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입찰이 시작되기 전에 입찰자가 계약 조건 및 선택 기준에 공개적으로 참여하고 조작할 수 없도록 해 공개 계약 후 특정 계약자에게 유리한 선택 기준의 위험을 제거하고 계약 업체 선정과정에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을 도입하였다. 또한, 공급자의 품질관리를 위해 실제 배달과 관련된 정보가 학부모, 교사, 집행 공무원 및 언론을 포함한 주요 이해 당사자에게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어 교사와 같은 참가자는 이 시스템을 사용하여 실시간으로 식사 배달 및 품질에 대해 보고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 외에도 스페인과 칠레,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이에 나아가 공적 자금의 흐름을 블록체인을 활용해 추적할 수 있게 하면 공적 자금의 부정 유출을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2017년에 영국의 한 NGO에서 스와질랜드의 한 NGO를 통해 학교들을 돕는 원조프로그램에 블록체인을 시도했다.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기부받은 금액을 토크나이즈해서 전자화폐로 수혜자에게 전달하여 자금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래 비용도 현저히 낮추었다. 또한, 실질적 수혜자가 프로젝트 평가에 기여할 수 있어 프로젝트의 평가 시스템을 향상시킬 수 있다.

부정부패가 한 국가와 사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방법을 교육하고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협력하여 바꾸어나가야 할 것이다.

<송윤정 /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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