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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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에는 국경이 없다

2020-02-24 (월)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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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취업이민 수속을 해 주고 있는 미국 회사가 창립 10주년이 되어 볼티모어에서 큰 행사를 주최했다. 그 10주년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받은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

일단 파티라는 분위기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내 성품 탓이기도 하고, 또한 복장이 턱시도여야한다는 것도 영 낯설었다. 아들 결혼식때 그래야한다기에 턱시도를 입어봤지만 왠지 어색하기만 했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클라이언트가 초대한 파티이니 가야겠다고 생각해 가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내 크라이언트가 이 회사를 통해 영주권 신청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참 묘한 것 같다. 취업이민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부탁해 놓고는 나는 마침 선천적 복수국적 공개변론의 기간이 겁쳐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다. 사장은 나에게 몇가지 질문을 이메일로 보냈는데 그 땐 한국 체류 중이라 미쳐 답장을 해주지 못했다.

한국에서 돌아와서 서류를 찾아보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다른 변호사를 찾았나보다 했는데 서류가 드디어 도착하였다. 급히 사장에게 서류 잘 받았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며칠 후 직접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우선 일주일간 한국에 가서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을 참석하고 오느라 이메일 답장을 바로 하지 못했던 것을 사과하고 서류를 잘 받았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이해한다고 하면서 본인 회사 10주년 행사파티에 꼭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오해가 이해로 풀리는 순간이었다.


기대를 하고 간 파티는 아니었는데 난 너무도 큰 감동을 받고 왔다. 어색한 턱시도, 아직도 낯설은 파티…동양인은 손꼽을 정도, 대부분이 흑인이었고 회사의 클라이언트들이 참석한 파티였다.
이 회사의 사장은 흑인 부부인데 남편은 미 해군 장교로 제대 후 부인과 함께 의료관련 회사를 설립하였고 지금은 거의 50% 정도는 군에 납품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이 힘들게 시작했었으나 지금은 국제적인 발돋움을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흑인 부부는 회사 운영을 하면서 개인의 부 보다는 나눔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그곳 직원들은 입이 마르게 회사를 칭찬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회사를 다니는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복지면에서나 환경적으로 너무 잘 해주어 가족같다고 한다. 여 사장은 대학생이었던 아들이 죽은 뒤 그 아들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었으며, 의료 관련 학과의 대학에 기부금을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날 나의 테이블에 함께 했던 분은 그 기부금을 받은 학과의 흑인 여자 교수가 감사차 참석했는데, 그녀는 보스턴 칼리지에서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간호학 박사학위를 1992년 받았다고 한다. 흑인사회의 산역사와 증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눈 파티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직원의 아들이 한국 평택의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장은 이 회사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에 크리스마스 때에 100개 의료장비세트와 선물을 기증해 주었다고 한다.
그날 평택에서 직접 온 미군이 부대를 대표해서 감사장을 들고 와서 전달해 주었다. 배려와 나눔을 중시하는 관대한 회사운영 방향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날 파티에는 흑인 부부 사장의 가족들이 미시시피 등 여러 곳에서 와서 축하해 주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흑인 사회의 강한 가족애를 접할 수 있었다. 흑인에 대한 게으름 선입관 혹은 무섭고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은 이해 부족에서 나오고 또한 얼마나 잘못된 편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백인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듯이 흑인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동양인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결국 사람 나름인 것이다. 즉 각 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종이나 피부색을 바탕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며 차별과 편견의 뿌리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밤 8시부터 시작한 축하 파티가 무르익자 댄스 경연대회가 시작되었는데 춤을 출지 모르는 나는 어색하여 몰래 행사장을 빠져 나왔다. 주문한 택시가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나는 볼티모어의 쌀쌀한 바닷바람을 벗어나고자 쏜살같이 택시로 뛰어갔다. 그런데 그 때 한 중년의 흑인이 택시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날 나는 내 인생에서 그렇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모두가 칭찬하고 감동을 받는 그런 회사가 보이지 않는 곳곳에 있음으로 이 사회는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유명해지고 수익을 많이 내는 것 보다는 유익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모두의 희망이 되어주는 그 회사와 사장부부가 참 위대해 보였다. 깨달은 것은 나도 유명한 변호사가 되기 보다는 유익한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밤이었다.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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